[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 정부의 청약제도 손질이 세대 간 갈등에 이어 세대 내 갈등까지 촉발하는 모양새다. 공급물량 변화 없이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소득요건을 완화하면서 맞벌이 연봉 1억원인 세대도 '특별공급' 혜택을 보게돼, 정작 혜택이 필요한 계층의 혜택이 줄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7ㆍ10 대책을 통한 생애최초 등 특별공급 비율 확대로 일반공급분 몫이 줄어든 중장년층에서는 "나이 많은 게 죄냐"는 불만 역시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15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전날 정부가 발표한 신혼부부, 생애최초 특별공급 소득기준 완화 방안을 둘러싸고 날선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30대 A씨는 "특별공급의 존재 이유가 무색해질 만큼 일반화된 기준"이라며 "차라리 무주택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추첨으로 입주자를 가리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반면 같은 30대인 B씨는 "소득이 조금 많다고 특별공급에서 배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며 정부 방안을 반겼다.
소득기준 완화를 놓고 이 같은 갈등이 나오고 있는 것은 민영주택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의 30%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40%(맞벌이 160%) 이하까지 신청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3인 가구의 경우 연봉 기준 외벌이 9336만원(세전), 맞벌이 1억668만원 수준인 세대도 특별공급 대상에 포함된다.
특히 이번 방안을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단순히 소득기준만 완화한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에 해당하는 월평균 소득 100%(맞벌이 120%) 이하 가구분 물량을 75%에서 70%로 줄이고 일반공급물량(30%)을 더 늘린 탓이다. '보다 혜택이 필요한' 이들의 파이가 뺏겼다는 주장이다.
신청 자격 기준을 자산을 뺀 채 소득으로만 두는 데 대한 불만 역시 높다. 자산은 많고 벌이만 적은 '금수저'에게 더욱 유리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부모 등으로부터 도움 없이 부부가 벌어 생활하는 대부분의 중견ㆍ대기업 신혼은 세전 소득이 완화된 기준 역시 넘어서는데, 이들은 일반 청약 역시 가점이 모자라 넣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청약시장에서 소외된다는 얘기다.
이미 청약시장에서는 과도한 특별공급 비중에 대한 무주택 중장년층이나 어렵게 빚을 내 외곽에 집을 마련한 1주택자들의 박탈감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50대 C씨는 "요즘 같아선 청년만 국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물량을 늘려 2030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고가점자분 물량을 빼서 나눠주는 식이라 기준에서 탈락되는 이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세대 간, 세대 내 갈등은 정부가 공급이라는 파이 자체를 늘리지 못한 상황에서 청약제도를 통해 젊은 층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데서 촉발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똑같은 물량을 놓고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나눠주려다 보니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결국 근본적 처방은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확대 뿐"이라고 말했다.
청약 제도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근본적으로 청약 당첨만 되면 수억원 차익이 당첨자에게로 돌아가는 구조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분양을 받은 이에게 시세 차익이 고스란히 돌아가는 '로또분양'이 청약 과열을 심화시키는 것"이라며 "여러 번 수정으로 왜곡된 청약 기준을 다듬는 한편 채권입찰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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