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후 소박한 꿈, “정부의 ‘관광숙박 확충 특별법’에 날라갔다”
‘분양형호텔’에 투자했다 잠못이루는 60대 소유자의 사연
외국인관광객 유치하려 정부는 특별법까지 제정해 장려정책
남아도는 전국 4만여 객실, 150곳 과잉공급 … 대책은 없나
구조조정하려 해도 세금·대출이자 때문에 흉물로 방치돼
과잉공급 등으로 인한 경영난을 겪으면서 운영자가 자주 바뀌는 등 영업 중단이 반복되고 있는 제주도 서귀포의 한 분양형호텔. 새 운영자가 나서 경영을 재개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부산에 사는 60대 A씨는 4년 전 은퇴 이후를 대비해 또박또박 생활비를 탈 요량으로 ‘듬직한 연금’을 찾아다녔다.
이래저래 귀동냥 눈동냥 끝에 퇴직금 등 모은 돈을 다 털고 모자라는 돈은 대출받아 2016년 제주도 서귀포의 한 ‘분양형호텔’을 분양받았다.
분양형호텔은 아파트처럼 투자자들이 객실별 소유권을 갖고 있고 호텔 위탁운영사가 객실을 판매해 그 수익을 배분하는 수익형 부동산이다.
당시 제주도의 ‘주가’는 ‘달나라까지 올라간다’는 기세여서 투자한 돈을 회수하는 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노후 여행을 즐기다 객실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숙박 수익까지 낼 수 있으니 그만한 ‘연금’은 없다고 A씨는 본 것이다.
2015년부터 그런 생각을 품고 투자한 ‘A씨’들은 올해까지 전국에 4만여명으로 불어났고, 그런 호텔들이 151개나 지어질 만큼 분양형호텔 개발사업이 대박을 터뜨린 듯했다.
은퇴 이후의 안정적인 삶을 꿈꾸던 A씨는 요즘 하루하루 눈뜨기가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앞서 정부는 국내에 외국인 관광객이 한류를 타고 급격하게 증가하자 몰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2012년부터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공중위생관리법으로 일반숙박업에 대한 건설사업 승인과 인가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정부의 숙박업 장려 정책과 함께 때마침 저금리 환경이 조성되자 분양형호텔 수요 바람이 세차게 일었다.
나이 들어 소득을 걱정하는 장노년층을 중심으로 분양형호텔은 안전하고 편리한 자영업 창업 개념으로 다가왔다.
A씨처럼 금융기관 저금리 대출을 안고 호텔 객실의 ‘구분소유권’ 취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2015년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준공 및 영업을 개시한 국내 분양형호텔은 무려 151개에 이르고 객실 수는 4만실이 넘었다.
서울, 부산, 강원도 등 전국 관광지로 분양형호텔 개발이 확산됐지만 전체의 35% 정도인 56곳이 세계적 관광지인 제주도로 쏠렸다. 2016년부터 관광객 수요보다 훨씬 많은 객실이 공급되다 보니 국내 분양형호텔은 공급과잉 현상을 빚게 됐다.
마침내 제 살을 깎아야 하는 저가경쟁으로 경영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2019년 말에는 전국 호텔들의 평균가동률이 대부분 50% 밑돌게 됐다. 버티기 위한 저가경쟁은 4성급인 호텔의 객실 단가가 3만원~4만원 선인 모텔 가격 수준 이하로 떨어지게 됐다.
결국 전국 대부분의 분양형호텔은 경영 적자에 처하게 됐고, 그 가운데 다수의 호텔은 파행 운영과 내부 분쟁까지 휘몰아치는 상황을 맞았다.
분양형호텔의 저가 경쟁은 일반 숙박업에도 영향을 줘 성수기를 빼면 객실의 출혈 판매 현상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로선 싼 가격이 만족스럽지만 펜션, 게스트하우스, 호텔숙박업 운영자들은 경영난에 내몰렸다.
숙박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제주도의 예를 보면 관광호텔을 비롯한 일반 숙박업과 펜션까지 합치면 7만4000여개의 객실이 영업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 기준으로 실제 제주도 하루평균 방문객 4만명을 감안해 객실수요를 추정하면 1만6000개~2만개의 객실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요인 셈이다.
정책 입안 과정에서 제도와 법령 정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책이 서둘러 시행되다 보니 수분양자와 시행사, 위탁사 간 분쟁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19라는 재앙이 올 것으로 예측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공급과잉 사태에서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던 분양형호텔 업계는 올해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 재앙’ 앞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한 분양형호텔 소유자는 “전국 4만여명의 구분소유자들 사정이 대개 같다”며 “나오지 않는 임대료에 애물단지가 된 객실소유권을 부여잡고 높은 이자 감당에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 1억원 이상 담보대출을 안고 있으나, 임대 수익은 대부분 이자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곳이 대다수여서 많은 이들이 파산 직전에 놓였다는 것이다.
객실 소유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호텔은 경영난으로 종사하고 있는 직원의 해고나 무급휴직 등으로 고용을 유지하기 힘든 실정이다.
대개 현재 여러 경제 분야의 불경기를 코로나19에 모두 누명을 씌우는 분위기이지만 냉정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분양형호텔은 정부의 관광시설 수급 조절에 정책의 문제가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분양형호텔을 시공했다 시행사 부도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큰 어려움에 부닥친 한 건설업체 대표는 “분양형호텔을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근간인 호텔·숙박업계 전체가 몰락할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돼 여행업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될 때는 이미 상당수의 호텔이 파산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호텔 등 숙박업은 수선과 유지관리, 리모델링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안전사고 문제,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이미지 실추와 그로 인한 숙박시설 부족 현상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전국 151개의 분양형호텔에 종사하고 있는 5000여명의 직접고용 종업원과 관련업계 종업원 등 1만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도 실직 사태를 맞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4만여명이 넘는 객실 소유자들의 삶의 터전이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이는 관광산업 붕괴와 실업사태, 다수의 구분소유자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현재 4만여명의 객실(구분)소유자들이 안고 있는 대출규모는 대략 4~5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이 제2금융권을 통한 여신이기에 채무 불이행으로 인한 금융부실로 이어진다면 사회적 비용 발생이 초래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구분소유자 대부분이 1억원 이상의 대출금을 안고 있으며 대출금리가 1금융권 이용자는 3%대이고 2금융권 이용자는 4~5%대의 고금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분소유자들은 관광산업 관련 업체만 지원대상으로 하지 말고, 분양형호텔도 관광산업의 하나로 태어난 것이어서 관광업계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들과 같은 지원대상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객실 하나만 소유해도 똑같이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등 사업자로서 역할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이 업종에 대한 법령 정비 등 제도적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또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간까지만이라도 범국민적 재난대책 차원에서 다른 산업과 형평성을 고려해 대출금리도 2%대 이하로 인하할 것으로 호소하고 있다.
법과 제도 정비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현재는 관광호텔이 아닌 ‘공중위생관리법’ 상의 일반숙박업인 분양형호텔 역시 관광산업에 포함시켜 관광진흥기금을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의 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숙박업계 관계자는 “지금 이대로 분양형호텔을 방치하면 객실 소유자는 물론이고 관광업계도 여러 면에서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금리나 세제 지원혜택, 법과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국내 관광숙박 산업 전체도 큰 화를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대출금리 인하는 기본이고, 취득세에 파격적인 혜택을 줘 자금여력이 조금이나마 있는 개인이나 업체가 세금 부담 없이 객실을 인수해 분양형호텔 전체를 구조조정을 하도록 지원하는 적극적인 대책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분양형호텔 구분소유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부가 지금까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설비 공급과잉에 따르는 출혈경쟁으로 일어나는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한 구조조정과 기업의 인수 합병을 지원한 적이 셀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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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공급을 조절하면서 취·등록세 등 지방세법 감면특례법을 제정하면 과잉공급으로 인한 심각한 출혈 경쟁과 도산 상태인 개별 구분소유권의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이 자연스레 진행돼 극단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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