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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대선, 4자 필승론과 필패론이 맞붙은 역대급 승부

최종수정 2020.09.30 09:00 기사입력 2020.09.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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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대선을 가르는 4개의 키워드 ① 지역…DJ·YS 모두 승리 자신, 결론은 노태우 어부지리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대권은 정치인의 꿈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의 정치적 고비를 넘어야 하고,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나야 한다. 한국 대선 역사를 되짚어보면 판도를 가른 요인은 추려낼 수 있다. 지역과 인물, 선거구도와 투표율 등 대선 판도를 좌우했던 키워드를 토대로 4회에 걸쳐 역대 대선을 분석해본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20일 서울 남산을 찾은 시민들이 시야가 트인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20일 서울 남산을 찾은 시민들이 시야가 트인 도심을 바라보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대선을 꼽으라면 1987년 그날의 승부를 빼놓을 수 없다. 모두 5명의 대선 후보가 출마했는데 0.20%를 얻은 신정일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정치 거물들이었다.


이른바 ‘3김 시대’를 이끌었던 3명의 정치 지도자들이 모두 대선에 출마해 자웅을 겨뤘던 선거가 바로 1987년 대선이다.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 김영삼 통일민주당 후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후보가 맞대결을 펼쳤다. 이들과 맞선 인물은 당시 집권 여당인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였다.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끝내고 국민이 대통령을 뽑을 기회를 얻자 야당의 기세는 대단했다. 대선에 출마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란 자신감이 넘쳐났다. 만약 김대중 후보와 김영삼 후보가 단일화를 이뤘다면 1987년 대선은 싱거운 승부가 될 수도 있었다.


1987년 대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지역 선거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김대중 후보, 충청을 대표하는 김종필 후보와 영남 중에서도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노태우 후보,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김영삼 후보가 맞붙은 선거였다.


실제로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텃밭에서 몰표를 얻을 힘이 있었다. 이른바 ‘4자 필승론’ 또는 ‘4자 필패론’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는 호남의 몰표와 수도권, 특히 서울의 강세를 토대로 대선 승리를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지역을 대표하는 4명의 후보가 맞붙으면 김대중 후보가 유리할 것이란 4자 필승론의 배경이다. 영남의 경우 노태우 후보와 김영삼 후보가 표를 나눠 갖게 되니 결국 김대중 후보에게 유리한 수도권이 승부의 판세를 가를 것이란 진단이었다.


반면 4자 구도로 이어지면 집권 여당 프리미엄을 지닌 노태우 후보가 승리를 거둘 것이란 4자 필패론도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


1987년 대선은 예상대로 지역주의가 극심했다. 흑색선전도 만만치 않았다. 김대중 후보는 광주에서 94.41%를 득표하며 압승을 거뒀고, 김종필 후보는 충남에서 45.03%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대구는 노태우 후보가 70.69%를 얻으며 여유 있게 승리했고 부산은 김영삼 후보가 55.98%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지역의 득표율만 비교한다면 김대중 후보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유권자 수를 고려하면 지역의 맹주들이 몰표를 받는 지역선거 구도는 결과적으로 김대중 후보에게 불리했다.


당시 광주 유권자는 52만여명에 불과했다. 반면 대구는 127만여명, 부산은 229만여명에 달했다. 광주보다 대구와 부산이 각각 2배, 4배가 넘는 유권자를 보유했다.


김대중 후보 쪽에서는 648만여명의 유권자를 보유한 서울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다른 지역의 패배를 상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서울의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뤄진 15일 서울 영등포구 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뤄진 15일 서울 영등포구 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 작업을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김대중 후보는 서울에서 183만3010표(32.62%)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위, 3위와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노태우 후보는 168만2824표(29.95%)를 얻으며 2위를 기록했고, 김영삼 후보도 163만7347표(29.14%)를 얻으며 선전했다.


김대중 후보는 서울에서 노태우 후보보다 15만여표, 김영삼 후보보다 20만여표를 앞서는데 그쳤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대구에서 노태우 후보보다 77만여표, 부산에서 김영삼 후보보다 93만여표를 뒤졌다.


4자 필승론이 아닌 4자 필패론이 옳았음이 입증된 것이다. 극심한 지역구도로 펼쳐졌던 1987년 대선 결과가 이를 증명했다. 노태우 후보는 36.64%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어부지리로 1위를 차지했다.


김대중 후보는 27.04% 득표율로 3위에 머물렀고 김영삼 후보는 28.03%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크지 않았다. 김종필 후보는 충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고 8.06%를 얻으며 4위에 그쳤다.


지역이라는 변수는 1987년 이후 대선에서도 판세를 가르는 핵심 변수였다. 다만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특정 지역 압승 현상은 과거에 비해 완화했다. 지역이라는 변수는 대선에 나선 정치인들에게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역 구도의 우위만으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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