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통신비 2만원 지급, 지금 고집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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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기자의 아버지는 택시운전사다. 택시 호출앱 활용을 위해서는 꽤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통화 중심의 요금제를 데이터 중심 요금제로 바꿔드린 것이 올해 초였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우리 경제를 올스톱시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아버지는 손님이 없다며 어느 순간부터 택시 운전대를 놓았다. 데이터도 거의 쓰지 않는데 요금은 꼬박꼬박 나가고 있어 속상하다는 푸념도 늘어놓는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통신비 2만원 인하를 원하느냐'고 묻자 "그럴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형 통신사가 아닌 알뜰폰 요금제로 갈아타거나, 요금 결합 등 얼마든지 통신비를 아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서다. 전 국민에게 2만원씩 나눠준 돈은 공짜가 아니고 결국 국민 세금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당정이 통신비 2만원 추진을 밀어부칠 기세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통신비 지원을 비판하는 것은 이해 불가"라며 통신비 2만원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한 가족에 중학생 이상이 4명이면 8만원의 통신비를 아낄 수 있지 않느냐'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60%의 국민들은 통신비 2만원을 지원받으면 중학생 자녀들을 둔 4인 가족이 8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비판하는 게 아니다.


'통신비 2만원 지원' 자체는 매우 좋은 아이디어다. 다만 그 시기가 문제다. 지금 가장 지원이 시급한 이들은 한부모가족이나 빈곤가족, 노인가족 등 소외된 이들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산 위기에 놓이게 된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역시도 지원이 절실하다. 9000억원이나 들여 통신비를 인하해주느니 그 돈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만약 통신비가 부담되는 이들이 있다면 알아서 알뜰폰 등 더 저렴한 요금제로 전환하면 될 일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지적도 일리가 있다. 예정처는 4차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통신비 2만원 지원 사업에 대해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이용자만을 대상으로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인구수보다 많은 이 시대에 미가입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할 이도 있겠지만, 기자의 아버지도 얼마 전까지는 미가입자였다. 기자가 아버지의 것까지 중복 회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미가입자들 중 통신사에 미처 가입할 여력이 없는 '소외계층'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의 발원지에서는 이미 '종식'을 외쳤다지만 아직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들이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한때 코로나19 신규확진자 수가 한자릿수로 줄며 추가 확산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지금은 2차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추석을 전후로 인구이동이 늘면서, 혹은 독감 시즌을 맞아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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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비 2만원 인하를 해주면야 고맙고 즐겁다. 돈을 준다는데 기분이 나쁠 이가 누가 있겠나. 그러나 그 뿐이다. 내 즐거움은 한 순간 뿐이지만 소외된 이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한정된 곳간의 돈을 의미있게 쓰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가 헛되이 써 버린 9000억원의 가치를 뼈저리게 느낄 때가 올 지도 모른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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