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상 새 기준 발표…소수·유색 인종, 여성, LGBTQ 포함
아카데미 측 "영화 산업 변화 촉매제 될 것"

지난 2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사진=EPA연합뉴스

지난 2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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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가연 기자]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작품상에 한해 사회적 소수자를 포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다양성 기준을 추가한 가운데, 이를 두고 미국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마땅한 조치였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작품의 창작성을 해치는 '기계적 평등'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측은 지난 8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작품상에 대한 새 기준을 발표했다. 기준은 A, B, C, D 네 영역으로 분류되며 각각 '화면 속 묘사, 주제 및 내러티브', '창의적 리더십 및 프로젝트 팀', '업계 진출 및 기회', '관객 개발' 등이다.

A 영역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주연 배우나 비중 있는 조연 중 적어도 한 명은 소수 민족이나 유색인종을 포함할 것 △앙상블 배우나 단역 배우의 30%는 여성이거나, 유색인종이거나, LGBTQ(성적소수자)이거나 인지적 또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 또는 청각 장애인일 것 △영화의 주요 줄거리나 주제가 잘 표현되지 않는 집단을 다룰 것 등 항목 중 한 가지에 해당해야 한다.


B 영역은 △감독, 촬영감독 등 14개 주요 책임자 중 2명 이상이 여성·유색인종·LGBTQ·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일 것 △전 스태프의 30%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일 것 등 하위 항목을 포함하고 있으며, C 영역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유급 인턴 기회를 줄 것 △사회적 소수자에게 기술 개발 등 수련의 기회를 줄 것 등이다. D 영역은 고위직 2명 이상이 사회적 소수자여야 충족된다.

작품상 출품작의 경우 오는 2024년부터 4가지 기준 중 2가지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다른 부문에 대해서는 기존과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이같은 조치는 아카데미가 백인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만큼, 새 기준을 도입해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아카데미는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백인들의 축제'(#OscarsSoWhite)라고 불린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기생충'이 4관왕에 오른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다양성 부족을 지적하는 비판이 이어졌다. '기생충'의 수상에도 불구하고 후보나 수상의 큰 부분을 백인 남성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 배우 산드라 오가 지난해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의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사진=AP연합뉴스

한국계 미국 배우 산드라 오가 지난해 1월 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비벌리힐스의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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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지 매체 워싱턴포스트는 "이제 우리는 누구든 어디에서든 작품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기생충' 수상을 축하하면서도 "최근 아카데미는 백인 일색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갖추려고 해왔다. 올해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 감독이 없다는 점만 보더라도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작품상의 새 기준에 대한 반발도 거세다. 국내·외 영화팬들은 "기계적 평등", "과도한 'PC'" 비난을 쏟아내는가 하면, 일부 배우들도 표현 및 창작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PC란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하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 기존의 결괏값으로 여겨졌던 남성·백인주의 문화에서 벗어나자는 움직임을 뜻한다.


또 일각에서는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존 작품상 대부분도 이 기준에 못 미칠 수 있다. 오히려 수상작의 수준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같은 기준이 영화 산업에 대한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으며, 기계적으로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제도가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오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규정된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일반적이라고 여겨지는 소위 '정상성'을 얻지 못한 이들을 의미한다. 백인·남성·이성애 중심적 문화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를 위한 최소한의 규정인 셈이다.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공고해진 주류집단에 비해 비주류 집단은 기회의 불평등을 겪게 되기 때문에,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커뮤니케이션 및 저널리즘 학과가 지난해 상위 100대 흥행작을 조사한 결과, 소수 인종집단이 주연 또는 공동 주연을 맡은 인물은 32명에 불과했다. 여성이 주연 또는 공동 주연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43건이었으며, 이 중 45세 이상 여성이 주연을 맡거나 공동 주연을 맡은 영화는 3편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 또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의 65% 이상은 남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장애가 있는 인물은 2.3%에, LGBTQ의 경우 1.4%에 그쳤다.


이미 기존 수상작 또한 새 기준을 대부분 충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최근 15년간 작품상 수상작 중 73%가 새 기준을 충족했으며 영화 '디파티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티스트', '아르고' 단 네 작품만 기준에 들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매체는 "이 작품들도 조금의 변화만 있었다면 기준을 충족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아카데미 측은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다양성을 더 잘 반영하고 스크린 안과 밖에서 평등한 표현을 더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새 기준 제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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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화 제작을 시작으로 그 영화와 연결된 관객까지 우리의 다양한 세계인구를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아카데미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새로운 기준은 영화 산업 변화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가연 기자 katekim2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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