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홀 보행도로에 이끼 번식 … 장맛비 머금자 빙판처럼 미끄러워
창원시·진해구 관리기관, “영조물 보험 없어 국가에 배상신청해라”

보도블럭 위 곳곳에 초록빛 이끼가 번식해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인도. 비가 잠시 멎은 날 밤 미끄러운 이 인도를 걷던 60대 여성이 고꾸라져 팔과 광대뼈 등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보도블럭 위 곳곳에 초록빛 이끼가 번식해 있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인도. 비가 잠시 멎은 날 밤 미끄러운 이 인도를 걷던 60대 여성이 고꾸라져 팔과 광대뼈 등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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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황최현주 기자] “관리가 제대로 안 된 보행 도로를 걷다 다치면 어떡해야 하나요?”


경남 진해에 사는 김모 씨(60·여)에게 불행한 일이 닥친 것은 지난 7월 29일 오후 9시 지나서였다. 딸 집에 들렀다 귀가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던 김 씨의 밤길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일상이었다.

김 씨가 사고를 당한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 도로 옆 인도는 며칠 계속된 장맛비를 머금었을 뿐이다. 보행자 통행에 사용하도록 된 인도를 걱정하며 걷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 아무런 방비 없이 인도를 걷던 그는 몇 걸음 못 가 쓰러졌다.


보행자용 도로가 마치 미끄러운 빙판이거나 기름을 부어놓은 길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미 고꾸라진 찰나의 기억이다. 팔목이 부러졌다. 얼굴이 땅에 부딪히며 광대뼈가 골절됐고, 부러진 광대뼈 아래 뼈도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김 씨가 미끄러진 인도를 ‘빙판’이거나 ‘기름바닥’으로 착각한 까닭은 그다음 날 딸(38·박모)이 현장을 찾으면서 드러났다.


벌써 2년 다 된 완공된 도로의 표면에 푸른 이끼가 번져 있었다. 보도블록 틈새로 잡초도 얼굴을 내밀고, 푸른 이끼는 ‘바이러스’처럼 보도를 타고 번식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긴 장마가 이런 이끼들을 배양시켰다면 이 인도가 가진 위험성은 정말 없는 걸까?


딸 박 씨는 “누군가 주의 부족으로 일어난 단순 해프닝으로 보기에는 비를 머금은 길이 너무 위험했다”고 했다.


“일일이 사진으로 다 남겼어요. 방치된 도로처럼 아무리 장마가 길었다 해도 사람 많이 다니는 길에 푸른 이끼가 번져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죠”라며 한숨 지었다.


근처에 교차로가 있고 버스정류장 가는 길목이라 어린이 등 보행자가 제법 많은 길이라는 것이다. 관할 기관에 따르면 이 인도에서 김 씨처럼 미끄러져 민원 제기를 한 주민이 또 한 명 있었다.


이 인도를 관리하는 진해구 관계자는 “그 도로는 영조물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서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답했다.


관리책임은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비가 오면 모든 도로에 위험안내문을 걸어놓을 수 없지 않으냐”며 보행자의 부주의에 누명을 씌우는 듯한 분위기다. 상급 관서인 창원시 담당자도 거의 같은 대답이다.


영조물 배상책임보험은 국가나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도로나 다리, 난간 등 시설물로 인해 사고가 났을 때 관할 지자체서 가입한 보험으로 배상해주는 제도이다. 만약 보도블록이 깨져서 보행 중 다쳤을 때 피해자가 시설물 관리주체에 대해 청구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다.


보험이 안 돼 있으니 김 씨는 이 보험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국가배상심의회에 배상 신청을 해야 하고, 검찰의 최종 배상 결정 때까지 외롭게 ‘외쳐야’ 어느 정도 피해보상을 받게 된다.


김 씨는 ‘불행’이 닥친 그 날 밤부터 13일간 입원해 몇 차례 수술을 받고 지금은 치료와 재활 중이다. 병원비 감당도 큰 부담이었다. 꾸준히 해오던 요양보호사 일도 접었다.


딸 박 씨는 “저나 어머니 모두 바쁘게 살고 생계가 막막한 데 앞으로 국가배상청구 절차를 밟는 것도 큰 부담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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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보도블록 위에 번식한 이끼를 탓해야 할지, 그 이끼를 더 미끄럽게 만든 장맛비를 탓해야 할지, 관리 기관은 팔짱만 낀 채 국가가 일부 배상해줄 거라는 친절한(?) 답변에 두 모녀의 한숨만 더 길어지고 있다.


영남취재본부 김용우 기자 kimpro77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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