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딸깍발이]서울동네, 구석구석, 뚜벅뚜벅
서울을 걷다 / 정연석 지음 / 재승출판 / 1만5000원
역사속으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연남동 옆동네 '골목부자' 연희동
한강로동 용산전자상가의 쇠락…
히로히토(裕仁) 일본 태자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1925년에 지어진 서울 중구 동대문운동장은 일본 고시엔(甲子園)에 이어 동양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컸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대회인 제10회 전조선경기대회가 1929년 이 곳에서 열렸다. 일제강점기 경평축구대회부터 1970년대 황금기를 달린 고교야구와 프로야구ㆍ프로축구의 개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억하거나 전해들은 아마추어ㆍ프로 스포츠의 출발점은 모두 '동대문'이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의 국장, 해방 후 혼란한 정국 속 찬탁ㆍ반탁 집회와 여운형ㆍ김구의 장례식도 여기에서 벌어지고 치러졌다.
현대사의 태동기에 탄생한 동대문운동장은 이후로 85년 동안 압축성장의 굴곡을 고스란히 목도하다가 2008년 5월 '굿바이 동대문운동장' 행사를 끝으로 철거됐다. 그 자리에 마치 불시착이라도 한 것처럼 내려앉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그 위용 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낯선 이미지를 선사한다. 4만5000장의 알루미늄 패널은 85년의 역사를 뒤덮는 은빛 비늘처럼 빈틈없이 반짝인다. 그 시절 아련한 풍경의 끝자락이라도 기억하는 이들에게 DDP의 존재는 '이제 그만 잊으라'는 다그침이 아닐까.
저자는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에게) 동대문운동장은 처음부터 관심 밖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간수문으로 가는 계단에 앉아 있자니 은색 알루미늄 패널과 회색 콘크리트 벽 아래로 한양 도성의 돌벽이 지층처럼 겹쳐 보인다. 그것은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의 중첩처럼 느껴졌다." 동대문 운동장ㆍ야구장 터에는 1968년에 설치된 조명탑 2개만이 겨우 남아있다.
DDP나 동대문운동장 일대가 저자에게 이처럼 분명한 단절의 상징이라면 서대문구 연희동은 여전히 오묘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동네다. 연남동과의 경계에 버티고 서서 그늘을 시커멓게 드리우는 굴다리를 지나면 개성 넘치고 예쁜 카페와 오래된 식당, 중국음식점, 술집, 옷가게, 공방이 수두룩하다. 궁동근린공원을 넘어서면 또 다른 연희동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궁동산 자락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선 오래된 집들과 좁고 경사진 골목이 미로처럼 뻗쳐있다.
연희동이라고 하면 전직 대통령이 둘이나 사는, 강남시대 이전부터 돈 좀 있는 부자들이 저택을 지으며 모여든 동네를 떠올리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그런데 지금은 동네가 팽창해서 저택촌으로부터 방사형으로 생김새 다양한 공동주택이 즐비하고, 입지 괜찮은데 비교적 저렴한 전월셋집을 찾아 모여든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홍대 상권이 팽창해 연남동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연남동에 달라붙은 그 동네'로 인식하는 이도 많다. 그러므로 문지기처럼 버티고 있는 저 굴다리는 이제 '연남동에서 연희동으로 들어서는 굴다리'가 아니라 '연희동에서 연남동으로 나가는 굴다리'로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러울 듯하다.
빵집과 포목점, 철물점, 사진관, 금은방 같은 가게가 몇 십 년째 명맥을 유지하며 특유의 동네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이곳은 "마치 유기체가 세포분열을 통해 성장"하는 것처럼 "때로는 허물어지고 때로는 만들어지면서 전체를 유지"하는 맛이 있다. 광화문 쪽에서 버스로 찾아가려면 '연희 104고지' 정류장에서 내려야 한다. 104고지는 6ㆍ25전쟁 때 격전이 치러진 곳이다. 정류장 명칭의 결연함과는 전혀 달리 흐느적거리는 분위기 속에 거닐수 있는 골목길이 연희동에는 아주 많다.
도시여행자인 저자가 바라본
서울동네 20여곳의 이야기
'글로 찍은 사진'처럼 엮어
용산구 한강로동에 대한 저자의 감상 또한 흥미롭다. "4개의 호텔 체인이 170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플렉스인 서울드래곤시티는 용산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호텔 아래로 전자상가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용산 전자상가의 악덕상인을 일컫는 '용팔이'와 그들의 거점이었던 터미널상가는 기억하지만 터미널상가가 철거된 자리에 들어선 것이 서울드래곤시티라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젊은 층에서 특히 많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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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자상가는 전자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1980년대 초반에 조성됐다. 한때 연(年)매출이 10조원에 달할 정도로 잘 나가던 그곳의 이미지는 상가 중심을 관통하는 6차로 도로 청파로에 빚어진 체증과 더불어 기억될 것만 같다. 크고 무거운 컴퓨터를 사러, 혹은 그 컴퓨터를 고치러 드나들고 게임팩 값을 가열차게 흥정하던 전자상가는 어느덧 공실률이 20%가 넘는, 아슬아슬한 시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저자에게 동네는 "행렬이 잠시 쉬어가는 오아시스" 같다. 이런저런 사정 탓에 여기저기로 많이 옮겨다닌 데다 지금 발붙인 곳도 "언젠가 다시 유목민처럼 떠나야겠"다고 생각해서다. 서울에는 467개의 법정동(洞)이 있다. 도시여행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1999년 처음 발을 내디딘 서울의 이야기를 자신이 바라보고 느낀 대로 책에 담았다. 서울에 올라와 처음 터잡은 은평구 대조동부터 지금 살고 있는 강서구 마곡동까지, 20여개 동네의 이야기를 간추려 '글로 찍은 사진'처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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