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백종민 특파원] 미국에 와서 느끼는 가장 불편한 점은 행정처리의 후진성이다. 공무원들의 일처리 속도와 친절함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는 수준이다.
안 그래도 느려터진 미국의 행정처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극악스러운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차량 관련 업무다. 미국인들도 가장 혐오하는 공무원이 차량등록소(MVC) 공무원들이다. 미국의 차량등록소는 우리와 달리 면허 관련 업무와 차량 등록, 각종 검사를 모두 담당한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미국은 운전면허증이 신분증 역할을 한다.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차량 소유는 필수다. 미국인들은 수시로 MVC를 들락거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MVC 소속 공무원들이 '분노 유발자'라는 점이다. 통일된 기준이 있어도 본인의 기분과 민원인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고 제대로 답해주지 않는 게 다반사다. 민원 수요는 많은 데다 일 처리가 느리다 보니 문을 열기 한 시간 전에 가도 당일에 업무를 끝내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은 조그만 허점만 발견하면 기다렸다는 듯 다시 서류를 챙겨오라는 무시무시한 결정을 내린다. 운전면허 시험 시 자격을 한 번도 아니고 각 단계마다 계속 확인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기자도 면허증을 받기 위해 여러 차례 새벽부터 줄을 서야 했다. 새벽부터 줄을 서 시험을 보다 보면 어느덧 MVC가 문을 닫을 무렵이 된다.
뉴저지주 MVC가 최근 4개월여 만에 다시 문을 열자 결국 사달이 났다. 주내 곳곳의 MVC 마다 새벽부터 장사진을 친 민원인들로 가득했지만 공무원들은 과거 방식대로 업무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인해 무언가 달라졌겠지라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이날 새벽부터 줄을 서고도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민원인들은 언론과 주정부에 비판을 쏟아냈다.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는 결국 차량 등록과 검사 일정을 대폭 연기해주며 사태 수습에 나섰고 MVC도 번호표 발급과 사전예약을 시작했지만 이미 민심은 폭발한 뒤였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얼마든지 대비에 나설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결과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뒷북행정으로 일관 중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미국 내 최대의 감염지였던 뉴욕과 뉴저지가 좀더 일찍 대비에 나섰더라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수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같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사사건건 대립했고 한 발 늦은 대응으로 '대 재앙'을 초래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과거의 실패는 미래의 창이 돼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게 미국 정부의 현실이다.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도 코로나19 사태 후 달라진 환경에 맞춰 행정 비상계획을 정비해야 하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수익자 부담이 경제와 행정의 기본원칙인 미국에서 각 지자체들은 코로나19로 대부분 심각한 예산 부족사태에 빠져 있다. 혁신과 변화보다는 생존에 대한 고민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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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의 경쟁력 후퇴는 각종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미국은 지난해 3위에서 올해 10위로 급추락했다. IMD는 정부 경쟁력 하락을 이유로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은 보건과 경제 재건뿐 아니라 의료보험, 취약계층 보호, 산업구조 변화, 사회간접자본 재투자 등 현안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정책 집행에 나서는 일선 공무원들이 달라지지 않고선 순위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해도 주요 2개국(G2) 미국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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