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제70주년 기념식…유해 147구 중 신원파악은 7구 뿐, 140구 아직 가족 기다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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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지금은 흥남부두에 앉아서 바다를 쳐다보고 있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민자(여동생) 앞으로 편지를 쓴다. 부디 답장을 길게 보내다오"


7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유해가 돼 돌아온 6·25 전사자 고(故) 김정용 일병이 생전에 썼던 편지 중 일부다. 가족들에겐 편지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 김 일병의 실종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 1950년 8월 징집 당시 19세였던 김 일병은 그해 말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김 일병은 6남2녀 중 다섯째다. 현재 8남매 중 여동생만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2009년 6월 여동생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둔 덕분에 김 일병의 신원이 극적으로 확인됐다. 85세 백발노인이 된 '편지 속 여동생' 김민자 할머니는 "70년 만에 이게 웬일인가. 오빠가 돌아오다니…. 내가 그렇게 찾으려고 했는데, 이제야 돌아온 것 같다"며 한참을 통곡했다.


김 할머니는 평생 아들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뜬 어머니를 떠올렸다. 전장으로 떠나는 아들을 쫓아가며 부르던 뒷모습. 그의 뒷머리에 꽂힌 비녀가 햇빛에 비춰 애처로웠다고 했다. 아들의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어머니는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지않고 부러뜨리고는 "아들이 죽었는데,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느냐"고 슬퍼했다고 한다.

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를 맞이한 뒤 참전용사인 류영봉씨의 유해 복귀신고를 받고 있다. 
    당시 이등중사였던 류영봉씨는 미7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고 김정용 일병의 입대 동기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를 맞이한 뒤 참전용사인 류영봉씨의 유해 복귀신고를 받고 있다. 당시 이등중사였던 류영봉씨는 미7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고 김정용 일병의 입대 동기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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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0년이 지난 2020년 6월25일. 김 일병의 유해는 다른 146명의 전우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임무는 복귀 신고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88세의 참전용사 류영봉 이등중사가 대신했다. 김 일병과는 입대 동기다. "이등중사 류영봉 외 147명은 2020년 6월25을 기하여 조국으로 복귀 명을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노병의 떨리는 목소리에 국군통수권자 문재인 대통령은 거수경례로 답했다.


문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 중 두 번째로 6·25 기념식에 참석했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용사들의 유해를 유가족들과 함께 직접 맞이하기 위해서다. 유해 147구가 공군기 시그너스에서 하기되는 동안 가수 윤도한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조국수호에 평생을 바친 군인이 다시 못 올 흘러간 청춘에 대한 애환을 담은 내용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돼기도 했다.


이날 정부는 6·25 행사 최초로 호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서에 조포 21발을 발사했다. 이는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예우다. 기념식의 마지막 순서인 유해 봉송 차례가 오자, 문 대통령은 147구 운구행렬이 모두 현장을 떠날 때까지 약 8분 동안 서서 비를 맞으며 지켜봤다. 마지막 유해가 옮겨지자 거수경례로 예를 갖췄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기념식 제70주년 기념식에서 국군전사자 147구 유해봉송을 지켜본 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기념식 제70주년 기념식에서 국군전사자 147구 유해봉송을 지켜본 뒤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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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봉환된 유해 147구 중 신원이 확인된 것은 7구 뿐이다. 이 중 4구는 자녀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신원을 확인했다. 김 일병처럼 징집 당시 나이가 어려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생존 유가족도 대부분 작고한 경우 신원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 일병과 마찬가지로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故 정재술 일병은 올해 5월 외조카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신원을 확인한 사례다. 정 일병의 외조카는 5년 전 세상을 뜬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한평생 오빠를 그리워했다. 아직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빠를 찾으며 많이 울던 모습이 선명하다"고 회고했다. 가족을 잃고 어려운 삶을 이어오다, 실낱같은 기대 끝에 70년 만에 극적으로 유해를 찾은 이들은 "국가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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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140구의 유해가 여전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모시기 위해서는 신원확인에 필요한 유가족 DNA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는 방문 채취를 시행하고, 지난해 4월부터는 DNA 시범채취후 신원이 확인되면 최저 1000만원을 포상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DNA 확보율이 낮으면 어렵게 발굴한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보내주지 못할 수 있다"며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전사자 유가족이 더 많이 DNA 채취에 참여하기를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는 전사자 유가족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 02-811-6574~5)을 통해 안내받을 수 있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5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6·25전쟁 70주년 행사에서 국군 전사자들의 유해가 봉환되고 있다. 2020.6.25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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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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