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환 건설부동산부장

[데스크칼럼] '公益' 만능주의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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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둔 2018년 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서울 종로구 송현동에 있는 3만7141㎡짜리 빈 땅의 활용을 놓고 나름 공약 아닌 공약을 내걸었다. 한 명은 이 땅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국립한국문학관이 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후보는 해당 지명의 유래를 들며 "생태공원을 조성해야 한다"고 입장 차를 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박영선 현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당시 국회의장까지 거들고 나섰다. "정부가 사서 공영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땅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이미 2008년 2900억원을 들여 사들인 대한항공이었다. 엄연히 주인 있는 땅을 놓고 제3자가 나서 '감 놔라 배 놔라'식 훈수를 둔 셈이다. 이 땅에 이 회사가 거액을 들인 것은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도심에 전통 한옥의 멋스러운 모습을 지닌 제대로 된 호텔을 짓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이후 이 계획은 2년 만에 용도 폐기됐다. 학교 주변에 호텔이 들어서면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받는다는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후 녹슨 철제문과 돌담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잡풀만 무성한 채 지금까지 방치돼 있다.

서울시가 경영난 속 자구책의 일환으로 송현동 부지를 팔려던 대한항공의 계획에 제대로 딴지를 걸었다. 서울시는 이 땅에 대해 연내 문화공원 지정을 마친다는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심지어 4760억원이라는 구체적 매수가격까지 일방적으로 정해 대한항공 측에 통보했다. 사실상 시가 제시한 가격에 이 땅을 되파는 것 외에 다른 처분 방법을 막아버린 셈이다. 지난 10일 마감된 부지매각 예비입찰에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송현동 부지를 둘러싼 논란을 보며 '공공의 이익'이 우리 사회에 너무 쉽게 남용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이익을 침해할 때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공익과의 균형이다. 공공이 얻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면 개인의 이익은 일정부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동안 '공익'이라는 명분 아래 사유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당연하게 이뤄졌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1999년 당시 헌법재판소가 '지자체가 개인 소유의 땅에 도시계획시설을 짓기로 하고 장기간 이를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옛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내린 헌법불합치 결정을 되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결정은 사유지를 도시공원으로 지정만 해놓은 채 아무런 조치 없이 장기간 방치해온 행정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를 계기로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는 '도시공원 일몰제'가 도입됐다.

송현동 땅을 공원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도대체 공공의 이익이 얼마나 침해당하는 것일까. 제삼자가 이 땅을 사들여 토지 용도에 맞게 활용하는 것은 과연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일까. 이미 송현동 부지에는 입지 특성을 고려한 까다로운 건축규제 들이 겹겹이 쌓여있다. 제1종일반주거지역에 특별설계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토지 용도를 결정한 주체는 당연히 서울시다. 이를 뒤집고 이 일대를 문화공원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시가 자신의 도시 정책을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서울시가 주장하는 '공원화'가 일정부분 공익에 부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토지 용도를 바꿔 사실상 사유 재산의 가치를 훼손한 것도 모자라 협의도 아닌 일방적 가격을 제시하고 땅을 사들이겠다는 일련의 발상은 과도한 권한 남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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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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