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기자의 독서] 전쟁과 경제는 '정의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기원전부터 러시아 크림반도 침공까지…탐욕으로 시작된 전쟁이야기 35장 수록
경제적 이익은 전쟁 동기이자 목적…유전 탓에 시작된 '차코전쟁' 유전은 발견안돼

[기자의 독서] 전쟁과 경제는 '정의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잔 자코모 트리불치오(1440~1518)는 15세기 이탈리아의 귀족이다. 용병 대장 트리불치오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돈, 돈 그리고 더 많은 돈"이라는 말을 남겼다.


전쟁과 돈, 다시 말해 경제적 이익은 군림하고자 하는 인간 탐욕의 산물이다. 우리는 날마다 뉴스에서 힘으로, 힘이 안 되면 돈으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위에 군림하려 드는 모습을 본다. 최근 입주민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의 사건만 봐도 그렇다.

'권오상의 워코노미'는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전쟁과 경제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기원 전부터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다양한 전쟁 이야기를 35개 장에 나눠 다룬다.


단순하게 보면 인류가 저지른 악행을 경제적 시각에서 그 원인과 경과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책이다. 하지만 숱한 전쟁 이야기를 거듭해 읽으면서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이다.


그란차코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의 접경 지역이다. 밀림과 늪으로 이뤄져 사람이 거주하기 힘들다. 경제적 가치가 없어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모두 이 땅에 관심도 없었다.

그러던 중 1920년대 후반 한 정유업체에서 그란차코 북부에 많은 양의 원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는 1932년 9월부터 그린차코를 차지하기 위한 차코전쟁에 돌입했다. 전쟁은 1935년 6월까지 이어졌다. 파라과이군 4만명, 볼리비아군 6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파라과이가 승리해 그란차코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란차코에서 경제성 있는 유전은 발견되지 않았다.


'권오상의 워코노미'에서 언급된 전쟁은 다양하다. 펠레폰네소스 전쟁, 1차·2차 세계대전처럼 익히 알려진 전쟁도 있지만 차코전쟁처럼 생소한 전쟁이 훨씬 더 많다. 책은 글쓴이의 네 번째 군사 관련 서적이다. 그만큼 저자는 군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글쓴이는 경제적 탐욕은 제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중요한 동기라며 전쟁과 경제를 연결된 총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제국주의는 20세기 초 인류를 지배한 사상이지만 그 작동방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한다고 본다.

[기자의 독서] 전쟁과 경제는 '정의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원본보기 아이콘

경제적 이익은 전쟁의 동기이자 목적이 되지만 트리불치오의 지적처럼 경제는 전쟁을 일으키는 기반으로서도 작동한다. 1694년 설립된 영국중앙은행(BOE)이 이를 잘 보여준다. BOE는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영국 정부에는 안정적으로 전쟁 자금을 빌려줄 수 있는 은행이 필요했다. 은행은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대신 정부 대출 독점권, 다른 은행 설립권 같은 막강한 권한을 보장받았다.


인류는 어쩌면 경제를 기반으로 전쟁에 나서고 경제 규모를 키워 또 전쟁에 나서는 악행만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날 경제란 다분히 전쟁을 연상케 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전쟁, 무역분쟁 소식이 쏟아진다.


미디어는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고 늘 떠든다. 경제가 언제 불안하지 않은 적이 있었냐고 되묻고 싶을 정도로 경제 불안은 만성적인 현상이 됐다. 현재 세계 경제가 불안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다. 두 강대국이 총칼만 겨누지 않았을 뿐 경제력에 기반한 지리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경제전쟁도 인류의 오래된 악행이다. 아테네는 기원 전 432년 델로스동맹 소속 국가들에 메가라 시민들의 입국을 금하라고 명했다. 메가라는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반도 서쪽에 자리잡은 도시국가였다. 아테네는 자체가 주도하는 델로스동맹으로 메가라에 경제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경제전쟁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경제 제재가 명시적인 목표를 달성한 경우는 겨우 34%다. 시카고대학의 로버트 페이프 교수(국제정치학)는 PIIE의 분석결과를 다시 분석해 앞의 34%에 해당하는 제재 40건 중 실제로 성공이랄 수 있는 경우가 5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테네가 제재하고 나서자 메가라는 펠레폰네소스동맹 주도 세력인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했다. 이듬해인 기원 전 431년, 델로스동맹과 펠레폰네소스동맹 사이에 2차 펠레폰네소스전쟁이 발발했다. 아테네는 기원 전 404년 패망했다.


전쟁은 인류의 과오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섭도록 닮은 전쟁과 경제의 속성을 감안할 때 인류는 끊임없이 경제적 과오에 빠질 듯 싶다. 전쟁이 끊이지 않듯 말이다. 전쟁과 경제 모두 탐욕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악랄하기로 따지자면 경제가 더하다고 봐도 될 듯하다.


앞서 언급한 차코전쟁에서 미국의 스탠더드오일은 볼리비아 정부를, 영국·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은 파라과이 정부를 지원했다. 폭력의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한 셈이다.


(권오상의 워코노미/권오상 지음/플래닛미디어)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