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양적완화'에도…사그라들지 않는 한은 역할론
은행·증권 "결국 돈 빌려 대출하는 것은 민간의 몫…부담 여전해"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한국은행이 결국 '무제한 돈 풀기' 카드를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실물ㆍ금융 충격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풀기로 한 것이다. '한국형 양적완화' 조치로 전례없는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지만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한은의 대응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의 무제한 금융권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바탕으로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다음달 2일부터 가동된다. 채안펀드는 회사채 매입을 통해 채권시장 안정을 꾀할 방침이다. 앞서 한은은 이와같은 펀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의를 열고 RP 무제한 매입과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ㆍ대상증권 확대를 골자로 한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영규정과 금융기관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통상 한은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수시로 금통위에서 의결해 RP매입을 실시했는데, 이제부턴 매주 RP매입 창구를 열어두고 유동성이 필요한 금융기관에 무제한으로 자금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입찰방식도 한도 제약없이 모집 전액을 배정하는 방식이다. 모집금리는 입찰 때마다 별도로 공고한다.
외환위기, 금융위기때도 취하지 않았던 유동성 공급인 만큼 한은은 이번 조치를 '한국형 양적완화'라고 명명했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한은의 조치에 대해 "양적완화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밝혔다. 양적완화란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제로(0)로 낮춘 뒤 더는 금리를 낮출 여력이 없는 점을 고려해 돈을 공급하는 방식을 뜻한다. 주로 국채나 주택저당증권(MBS)을 규모나 기간을 특정해 매입, 장기금리의 지속적인 큰 폭 하락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윤 부총재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오늘 한은이 발표한 전액공급 방식의 유동성 지원제도는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면서도 "시장 수요에 맞춰 수요를 전액 공급하는 것이 사실상의 양적완화가 아니냐고 한다면 꼭 아니라고 할 수 없고, 그렇게 봐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윤 부총재는 또 "7월 이후에도 시장 상황과 입찰 결과 등을 고려해 조치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는 한은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주도하에 채안펀드·증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기로 했고 결국 금융권에서 십시일반해 자금을 출자하고 있는데, 한은은 금융권에 자금을 대출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것이 민간 금융기관들의 불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이 담보로 받을 수 있는 채권 대상을 늘려주긴 했지만, 안정적인 적격채권을 맡기면서 실제로 돈을 빌릴 금융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은이 RP매입을 하며 담보로 받을 수 있는 대상증권을 확대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지적이다.
한은조차도 RP매입대상을 확대하고 대상증권을 확대하며 늘어난 규모가 70조원으로 추정하면서도 확신하진 못하고 있다. 윤 부총재는 "이번 조치로 얼마나 돈을 공급할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금융권이 원한다면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선언을 하긴 했지만, 결국 금융권이 돈을 '빌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은 민간 금융기관에서 다 지게 됐다는 것이다.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 이후 생기는 부도 리스크는 여전히 은행·증권사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나설지도 미지수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채안펀드 등을 통하지 않고 직접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여전히 나온다. 한은은 그러나 매입할 채권에 담보할만한 대상이 없다면 어려울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은법 75조와 76조에는 한은의 여신과 증권 매입 대상이 국고채와 정부보증채로 한정돼 있고, 68조에는 여기에 회사채나 CP를 포함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결국 '파업 할까봐' 웨이퍼 보관함까지 밖으로 꺼...
윤 부총재는 "정부가 유가증권에 대해 보증을 한다면 금통위가 매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용이하다는 생각은 든다"면서도 "회사채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데, 그 건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는 별개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정부가 출자하는 특수목적 법인에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회사채·CP를 사들인다. 만일 손실이 생기면 정부 출자금에서 우선적으로 손실을 떠안는 구조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