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 씨알 함석헌
1961년 5월 16일 새벽,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이 군사정변(軍事政變)을 일으켰다. 전국에 계엄이 선포되었다. 침묵의 겨울이 왔다.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 대는' 겨울공화국. (양성우) 이 때 잡지 '사상계' 7월호에 실린 칼럼 한 꼭지가 시대의 양심에 불을 댕긴다. 제목은 '5·16을 어떻게 볼까', 필자는 함석헌이다.
"그때(4·19)는 맨주먹으로 일어났다. 이번엔 칼을 뽑았다. 그때는 믿은 것이 정의의 법칙, 양심의 도리였지만 이번에 믿은 것은 연알(총알)과 화약이다. 그때는 민중이 감격했지만 이번엔 감격이 없다. 그때는 대낮에 내놓고 행진했지만 이번엔 밤중에 몰래 했다. … 민중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 군인은 혁명 못한다. 아무 혁명도 민중의 전적(全的) 찬성, 전적 참가를 받지 않고는 혁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재가 있을 수 없다."
함석헌은 1901년 오늘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사전은 그를 '독립운동가,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으로 정의한다. 함석헌은 이 가운데 어느 틀에도 포박당하지 않는다. 목사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다. 그는 1934~35년 '성서조선'에 연재한 글을 모아 1950년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냈다. 이 원고를 손보고 4·19와 5·16에 대한 평가를 더해 1965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완성한다.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게는 이제 믿는 자만이 뽑혀 의롭다 함을 얻어 천국 혹은 극락세계에 가서 한편 캄캄한 지옥 속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는, 보다 많은 중생을 굽어보면서 즐거워하는 그런 따위 종교에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나는 적어도 예수나 석가의 종교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안락하기보다는 다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이 좋다."
함석헌의 사상을 드러내는 총괄적 어휘가 '씨알사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씨알사상은 위의 세 가지 근본적 질문을 품고 사색하고 고뇌했던 그의 혼에서 탄생한 결실물이다. 씨알사상은 그의 생명사상의 토양 속에서 움트고 자란 꽃이요 나무이다." (김경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논문 '생명철학으로서 함석헌의 씨알사상')
박노자는 '국가의 살인'이라는 글에서 함석헌을 "20세기 한국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은 기독교적 평화주의 사상가"라고 했다. 함석헌에게는 반공을 명분 삼은 폭력과의 타협이 없다. 그는 1970년부터 10년에 걸쳐 '씨알의 소리'에 머리말을 썼다.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 출판인 김언호가 감탄했듯이 한 편 한 편이 시대와 역사와 인간을 성찰한 명문들이다. 읽을 때마다 글은 심장의 생각이며 양심의 노동임을 깨닫게 한다. 이런 글이 보인다.
"씨알의 바탕인 흙이 무엇입니까. 바위가 부서진 것입니다. 바위를 부순 것이 누구입니까. 비와 바람입니다. 비와 바람은 폭력으로 바위를 부순 것 아닙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쓸고 쓸어서, 따뜻한 입김으로 불고 불어서 그것을 했습니다. 흙이야말로 평화의 산물입니다. 평화의 산물이기에 거기서 또 평화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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