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앨범 판매부터 출판사, 아카데미, 카페까지 운영
초보자 위한 음악강의도 인기몰이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풍월당은 국내에 남은 거의 유일한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알려져있다. 사진 = 김현우PD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풍월당은 국내에 남은 거의 유일한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알려져있다. 사진 = 김현우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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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음반 시장이 쇠락하고 있던 2003년 여름,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클래식 음반매장이 문을 열었다. MP3의 등장으로 음악은 음반보다 음원으로 소비되고, 그중에서도 클래식은 소외된 장르로 인식될 때였다. 이러다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던 시기에 오직 클래식 음반에만 집중한 공간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탄생했다. '공들인 음악이 만드는 세련된 사회'를 표방하면서 문을 연 풍월당이다.


음반 시장의 대세를 거스르고 풍월당을 연 주인공은 정신과 의사였던 박종호 대표. 정신과 개원의 중 상위 납세자로 손꼽히던 박 대표가 병원을 키우는 대신 음반 매장을 열기로 한 것은 음반 시장의 위기와 함께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관련이 있다. 박 대표는 1년에 6~7회 정도 외국에 나가 공연을 챙겨 볼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공연 보는 데 쏟은 비용만 '빌딩 한 채 값'이 될 정도라고 한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박 대표가 외국에 나갈 때면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음반을 구해달라는 지인들의 부탁을 받았다. "1000만명이 사는 서울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왜 없을까"라는 물음이 풍월당 설립으로 이어졌다.

음반 매장뿐만 아니라 강의실과 카페를 갖춘 풍월당은 금세 클래식 애호가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찾는 명소로 발돋움했다. 클래식 음반매장으로 알려졌지만, 아카데미 운영과 클래식 서적 출판, 여기에 아티스트 쇼케이스까지 꾸준히 진행된다. 이런 공간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클래식 음악에 관한 모든 일을 하는 곳이죠." 풍월당 창립멤버인 최성은 실장의 간명한 답이 돌아왔다.


클래식 음반을 판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의가 필요했고, 강의를 진행하다 보니 또 자연히 출판을 시작하게 됐다는 풍월당은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그야말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공간이 됐다. 사진 = 김현우 PD

클래식 음반을 판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의가 필요했고, 강의를 진행하다 보니 또 자연히 출판을 시작하게 됐다는 풍월당은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그야말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공간이 됐다. 사진 = 김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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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당은 전공자는 많은데 감상자는 적은 풍토에서 초보자나 클래식에 목마른 이들을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한 끝에 교육을 위한 아카데미를 시작했다고 한다. 3년 전 착수한 출판사업도 '제대로 된 오페라 대본집'이 없어 직접 제작에 나서느라 시작했단다.

최 실장은 "풍월당의 강의는 전공자를 위한 강의가 아니에요. 누구나 오셔서 음악을 듣고,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로 들어가 사람을 이야기하고, 배경을 마주하고, 문학과 미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모르셔도 돼요. 그냥 가슴 하나만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음반을 위해 시작한 강의였지만 지금은 강의가 음반보다 인기가 많다. 음반매장은 지금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박 대표가 진행하는 강의 수익이 이를 상쇄한다고 한다. 강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박 대표는 수년 전부터 의사 가운을 벗고 풍월당 운영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공간을 살펴보다 문득 음반 진열장 아래, 빈틈없이 채워진 사인들에 눈길이 간다. 풍월당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사인은 작은 공연장으로서 풍월당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이 많은 아티스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굴까? 잠시 생각하던 최 실장이 답했다. "한 분 한 분 다 기억에 남지만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가장 인상적이었죠. 풍월당에 두 번 방문했는데, 그 인연으로 프랑스에서 출간한 에세이도 우리가 먼저 번역해서 출간했고, 또 타로의 앨범을 전 세계에서 제가 가장 많이 팔았을 걸요? (웃음) 그만큼 풍월당과는 각별한 아티스트입니다."


풍월당의 음반 진열장 아래엔 빈틈없이 사인들이 채워져 있다. 풍월당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사인은 작은 공연장으로서의 풍월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진 = 김현우 PD

풍월당의 음반 진열장 아래엔 빈틈없이 사인들이 채워져 있다. 풍월당에서 쇼케이스를 가진 아티스트들이 남긴 사인은 작은 공연장으로서의 풍월당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사진 = 김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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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몰라본 채 폐반된 앨범을 곡진히 살려내고, 연주자의 화려한 이력이나 명성 대신 청자를 감동시키는 좋은 연주를 기준 삼아 선택한 앨범은 곧 풍월당의 안목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여기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보전된 공간은 아련한 추억마저 선사한다. 매장을 찾은 한 20대 남성은 "어렸을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 풍월당을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며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모습이 감동, 그리고 믿음을 준다"고 회상했다. 이런 오랜 손님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자 풍월당은 이전 계획 등을 모두 접고 처음 문을 연 이 동네에서 여전히 월세를 내면서 운영되고 있다. 공간이 품은 개인의 역사까지 소중히 여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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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보다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지만 풍월당은 그 흔한 온라인 매장조차 없다. 듣고 사라지는 음악이 아닌, 만지고 궁구하고 이야기하고 책을 읽는 음악을 만나려면 오프라인에서 음반을 사야지만 가능하다 믿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소개글
@hewon_y 이런 곳이 있다니! #좋은곳 #소개시켜줘서 #고마워
@hey__stagra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반가게 풍월당 나들이. 운영진의 성실하고 전문적인 태도, 꾸준히 그곳을 드나드는 이들의 사랑이 풍월당의 매력을 만듭니다.
@b33357102 클래식 애호가들의 성지, 개인적으론 제 마음의 고향 #풍월당
@go_ok_dang 마흔아홉의 생일. 풍월당에서 아들에게 축하 선물로 받은 음반들. 함께 둘러보고 함께 듣고.
@sigfried97 클래식을 즐기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있을까 할 만큼 너무 멋진 곳이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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