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훈의 돛단Book]45년간 가정부 무임금...마르크스의 숨은 얼굴 보라
폴 존슨 '지식인의 두 얼굴'
종교인 대신해 근현대사 이끈 지식인
인류가 따를만한 인물인지 개인사 검증
다섯 자녀 고아원에 버린 장 자크 루소
노동 현장 찾지 않은 카를 마르크스 등
선입관 뒤엎는 200년사 지식인의 백태
오늘날 옥석 가릴 때 반면교사 삼아야
인류의 근현대사는 지식인이라는 존재와 함께 했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관념 체계를 형성하고 교조와 명령, 권유로 세상까지 움직이고자 했다.
사회계약론을 주창한 '지식인의 아버지' 장 자크 루소(1712~1778)나 역사 속에서 인류 행위의 법칙을 찾아낸 카를 마르크스(1818~1883) 같은 사회개혁가들부터 레프 톨스토이(1828~1910)나 헨리크 입센(1828~1906) 같은 문학가들에 이르기까지 지식인들은 인류 사회에서 프리즘처럼 다양한 각도로 빛을 발했다.
'지식인의 두 얼굴'의 저자 폴 존슨은 지식인들도 공적ㆍ사적 측면에서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학자이자 날카로운 시각의 칼럼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저자는 지난 200여년간 활약했던 지식인들이 진정 인류가 믿고 따를 만한 사람들이었는지 청문회에서 따진다.
첫 번째 청문회 대상은 루소다. 저자는 그가 근대적 의미의 첫 지식인이자 지식인의 전형으로 여러 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중고교 윤리ㆍ도덕 시간에 '사회계약론'이니 '에밀'이니 하며 밑줄 치고 외웠던 지식 너머 '어둠의 루소'를 보자.
장 자크 루소(오른쪽)와 14년간 동거한 바랑스 부인. 책 '지식인의 두 얼굴' 저자 폴 존슨은 그녀가 극빈상태의 루소를 적어도 4번 구해줬다고 말한다. 그러나 훗날 성공한 루소는 부인이 궁핍해졌을 때 갖은 핑계를 대며 외면한다.
원본보기 아이콘그의 삶은 비루했다. 그러다 39세 되는 해 과학ㆍ예술보다 자연에 우위를 둔 논문으로 일약 학계의 신성이 됐다. 루소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논문 한 편으로 프랑스 사교계의 단골 연사가 됐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연민과 건강염려증을 호소했다.
자기 변호를 위해 말이 바뀌는 건 다반사였다. 불면증에 시달린다면서도 때로 코 골며 숙면을 취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저자는 루소의 자기연민 그 배후에 엄청난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자신이 겪는 고통 면에서나 자신의 우수성 면에서나, 자신을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루소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양육서 '에밀'을 쓴 주인공이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동거녀 테레즈 사이에 낳은 다섯 명의 자녀를 고아원에 버렸다. 그는 테레즈에게 아이들을 버려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유는 '그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도 저서 '고백록'에서 "나는 평생 동안 단 한 순간도 감정이 없는 인간, 동정심이 없는 인간, 또는 극악무도한 아버지인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자식들에게 한 자기 행동을 되새긴 끝에 '에밀'에서 주창한 교육이론이 형성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마르크스는 또 어떤가. 저자는 "'자본론'을 읽어 보면 근본적으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비과학적인 데다 몸소 사실을 조사하려 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길 거부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 출신의 카리스마 넘치는 혁명가들을 경멸하기까지 했다.
저자는 마르크스가 자기의 이론이 여타 허황된 철학ㆍ사회이론과 달리 '과학적'임을 증명하고자 자기의 예견에 적합한 사실만 찾았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는 자기의 결론을 입증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신문 보도, 정부 자료만 뒤적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마르크스는 1860년대 중반 자본주의 노동환경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1845)'에만 의지했다. 그러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에도 엥겔스가 자기 주장을 위해 왜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이 들어 있다.
마르크스는 자기에게 충고하는 이들을 격렬히 비난했다. 동료 루트비히 쿠겔만(1828~1902) 박사가 "좀 더 체계적으로 살면 '자본론' 완성에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충고하자 마르크스는 그에게 절교를 선언하면서 끔찍한 독설까지 퍼부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출신의 사회개혁가를 경멸했다. 이론보다 현실적 해법을 중시하는 노동계 지도자들을 비난했다. 때로는 "유치하고 무지하며…" "유대인 깜둥이" 같은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마르크스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늘 시달리기도 했다. 저자는 고리대금업에 대한 격한 증오심이 마르크스의 도덕철학을 가동시킨 진정한 정서적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하녀를 무려 45년간 무임금으로 착취했다. 게다가 하녀와 낳은 서자를 끝까지 자기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농노해방과 종교적 구원을 화두로 삼으면서도 사창가에 드나들었다. 여성과 사귀는 것은 사회악으로 여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현대 미국의 윤리적 스타일을 창안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혐오하고 부인을 착취했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여성의 성적 자유에 대해 옹호한다면서도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진 않았다.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망상증 환자였다.
저자는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 아래 무고한 수백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을 목격한 우리의 비극적 20세기가 남긴 중요한 교훈은 지식인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두 얼굴'을 지닌 지식인이 넘쳐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들 가운데서 옥석을 가리는 일이다.
한편 '지식인의 두 얼굴'은 1988년 초판본이 나왔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에 번역ㆍ출간됐다. 지난달 국내 출간 30주년을 기념한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다. 좌파에서 전향한 보수 성향의 저자는 사회주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지식인들의 경우 특히 독하게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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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존슨 지음 /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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