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한 조각씩 떼어 내 먹다 보면 슬픔이 슬픔을 맛보는 순간이 있다 그러면 눈사람이 광대뼈를 드러내며 웃는다 열 살 이후로 작은 방에는 눈사람이 누워서 조금씩 녹는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문을 닫으며 혀를 끌끌 찬다 엄마는 차가운 수건을 이마에 올려놓다 지쳐서 쓰러지고 빙점을 알 수 없는 눈사람이 계속 녹는다 열세 살 이후로 눈썹이 녹고 머리카락이 녹고 코가 문드러지고 그럴 때마다 눈사람은 덜컹이는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 간다 심장이 아픈 눈사람은 녹는 손으로 심장을 감싸 안고 엄마는 녹지 말라고 울며 기도한다 눈물로 배가 부른 눈사람이 또다시 웃는다 붉은 뺨과 보조개를 드러내며 웃는다 열네 살, 막내야 착한 영령들이 사는 숲으로 너를 옮겨 줄게 심장은 녹지 말거라 그 후 조금씩 조금씩 더 녹다가 스물두 살에 다 녹아 버려 눈물의 강을 건너간 눈사람이 저쪽 숲에서 부엉이가 되었다 심장만 살아 눈사람의 유전자를 기억하며 파르르 떤다 슬픔의 숲에서 만나는 울음들의 친구가 되었다 밤마다 이쪽 도시에 출몰하여 손톱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다 엄마 저는 죽지 않았어요 고통은 수치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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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눈사람―마녀 일기 4/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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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르게 정리하자면 "눈사람"은 열 살 이후 스물두 살에 "눈물의 강을 건"널 때까지 "작은 방"에 "누워서 조금씩 녹"아 간 누군가를 대신한 비유다. 요컨대 "눈사람"은 "고통" 속에 살다 죽어 간 사람이다. 그리고 "눈사람"은 이제 "울음들의 친구가 되었"고 "밤마다 이쪽 도시에 출몰하여 손톱 부스러기를 쪼아 먹는다". 좀은 섬뿠하다. 그런데 그런 "눈사람"을 두고 "마녀"라고 부르는 게 온당할까? 시인이 적은 그대로 "고통은 수치가 아니"다. 죽어서까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외면하고 밀어내고 멸시하고 마침내는 "마녀"라고 손가락질하는 바로 그것이 "수치"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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