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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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 있다. 백남준(1932~2006)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 동안 유년기를 보낸 집터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1950년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7년, 독일에서 7년 그리고 미국에서 29년 살다 작고했다. 백남준이 실제로 살았던 집은 전쟁과 개발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창신동 197번지 옛 집터에 들어선 한옥이 그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2017년 문 열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영국 런던 소재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에서 백남준 작품 200여점을 전시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테이트모던은 최근 영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로 이름을 올린 곳이다. 익숙함 때문인지 전시를 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다만 그의 고향에서 출발한 그 짧지 않은 여정에서 뿌듯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오묘한 감정이 의례적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백남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하며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로 각인됐다. 그는 이 작품과 관련해 '독재자가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민중의 눈을 가려 세상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조지 오웰의 생각에 대한 도전장'이라고 자평했다. 게다가 '미디어는 정보를 전달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이자 단절의 시대에 대중의 눈을 일깨우는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라고 명명했다. 미래 현대인의 삶을 예견한 것이다.

미디어는 지식과 감정을 공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이제는 그 범위가 확대돼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며 이해와 오해의 겹을 조절하기도 한다. 언론 너머 예술과 문화까지 확장된 미디어는 인류에게 자연처럼 하나의 생존적 환경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백남준의 'TV가든(1974)'은 무성한 나무들 사이사이에 TV를 설치해놓은 작품이다. 'TV가든'은 TV가 자연 속에 식물처럼 의연히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삶이 새롭게 만들어진 미디어 환경에 놓이게 됨을 시사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백남준은 이런 환경에서 모든 것을 초월해 서로 연결돼 있는 현대인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이 자기 몸짓을 영상으로 비춰볼 수 있는 '참여TV(1969)'는 상호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선구적 참여예술 작품이다.


백남준은 이런 접속으로 문화ㆍ국가ㆍ언어가 서로 달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른 예술가들과 적극 협업했던 것은 끊임 없이 소통하고 자기 영역을 확장하고자 한 일관된 의지의 발로다.


백남준이 바라봤던 것은 인류의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한 긍정적 미래가 아니었을까. 그의 말처럼 삶과 예술과 과학은 이제 은유가 아닌 실재 정보로 다가오는 일상의 예술을 향하고 있다. 공유의 폭이 커지는 만큼 이를 다스릴 수 있는 마음도 넓어져야 한다.

인간은 풍족했던 자연환경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한 채 새로운 환경과 맞닥뜨리게 됐다. 이제는 미디어 생태계로 그 존속을 꿈꾼다.


백남준은 국적이 무의미한 예술가가 됐다. 운 좋게도 우리는 백남준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자기가 한국인이라고 늘 생각했다. 동양사상을 뿌리에 둔 그의 작품이 적지 않다.


런던에서 돌아온 뒤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을 다시 찾았다. 그가 뛰어 놀았을 이곳에서 새로 시작하면 좋을 듯해서다. 무엇보다 새해를 맞이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갇힌 생각의 틀이 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백남준이 생각했던 이 열린 시대에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기억해본다. 머지않아 그 시원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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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큐레이터ㆍ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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