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김남주 옥중시집 ‘조국은 하나다’ 펴낸 정진백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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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김춘수 기자]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이하 생략)


민족 시인이자 전사(戰士)로 불렸던 고(故) 김남주 시인의 대표적 시들 가운데 한 편인 ‘조국은 하나다’의 일부 내용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과 본질을 예측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시는 민중적 서정성과 전투적 이념성이 병존하는 등 한국 민중 문학사의 걸출한 창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가 세상에 나온 건 한 출판인의 특별한 열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김남주 시인은 박정희 유신독재 끝 무렵인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으로 체포돼 15년 형을 받고 무려 9년 3개월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1988년 12월에 자유의 몸이 됐다.

‘조국은 하나다’는 1988년 8월에 도서출판 남풍에서 펴냈다. 김남주 시인이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동안에 출판된 ‘옥중시집’이다.


도서출판 남풍은 이 시집을 펴내 크게 주목받았지만 공안 당국에 불려가 어려움을 겪었고, 서울 마포경찰서에 의해 화물차로 운반 중이던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책 3천 부를 그대로 탈취당하기도 했다.


아시아경제는 27일 당시 도서출판 남풍 대표였던 정진백(65) 사단법인 행동하는양심광주전남협의회장이자 김대중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사업회 상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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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대표는 81년 도서출판 남풍을 설립한 뒤 월간 ‘사회평론’, ‘사회문화리뷰’, ‘아시아문화’ 등을 창간하는 등 출판인으로 활동해 왔다. ‘분단시선집’, ‘조국은 하나다’를 비롯해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 ‘청화 큰스님 어록’, ‘성자의 삶’ 등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책들을 펴냈다.


-선생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에 남을 양서들을 집필, 간행하시면서 공적 역할을 수행해 오셨습니다. 출판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1981년 11월, 광주 호남동 천주교회 신용협동조합 2층에서 도서출판 남풍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문병란, 송수권, 김준태 시인, 문순태 소설가, 지선 스님, 홍성담 화백 등과 따뜻한 마음으로 교감하며 격려를 받았지요. 10여 개월을 기획한 끝에 1982년 9월 무크지 『남풍』을 첫 발행 했습니다. 당시 이을호 박사, 문병란, 송수권 시인, 문순태 소설가, 김준태 시인, 홍성담 화백 등이 필진으로 참여했어요.


-『남풍』을 월간지로 창간하지 않고 무크지로 발행하신 이유가 있나요?


무크(mook)는 매거진(magazine)의 ‘m’과 북(book)의 ‘ook’가 합성된 말입니다. 시리즈로 발행하지만 부정기적입니다. 그러나 내용은 단행본과 잡지의 특성을 동시에 갖춥니다. 당시 전두환의 언론 통폐합으로 일간·월간지 등록이 허가되지 않았기에 무크지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남풍』은 의외로 지역사회문화권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남풍』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80년대 초 지역사회의 미디어와 출판 부재에서 그런대로 ‘의식’이 있는 매체로 출발했기 때문이었겠지요. 『남풍』은 그러한 탄압기에서 민주인사들의 뜻을 모았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꽤 값진 의미가 있을 겁니다.


또 반민주적인 권위주의 체제에서 소통의 기제로 매월 정기적으로 신문자료집을 펴냈습니다. 국제 정세 인식과 국내 정치사회 동향에 대한 전망 차원에서 그때그때의 이슈와 주제를 가지고 여러 신문에서 발췌, 편집해 무료로 배포했지요. 당시 신문자료집 발행이 꽤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198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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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대중아 물이 거꾸로 흐른다』, 『분단시선집』 등 매해 양서를 출판하셨는데, 그에 관해 이야기해 주시지요.


1983년 10월에 펴낸 『대중아 물이 거꾸로 흐른다』는 당시 불교계 지도자 서옹(전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큰스님, 지선 스님을 수일간에 걸쳐 인터뷰해 낸 책입니다. 300여 쪽에 인권, 평화, 민족, 민주주의, 역사, 종교의 역할과 불교의 가르침 등 다양한 화두를 녹여 직접 편저자로서 정리, 집필했습니다. 민족과 역사의 현장에 밀착되지 못했던 불교의 현실태를 극복하고 시대와 호흡을 함께하는 불법에 힘을 싣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후 1984년 5월에는 분단 40년을 맞아 『분단시선집』을 발행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 한국 출판인단체에서 수여하는 ‘오늘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언론과 독자의 반응이 좋아 증쇄를 거듭했고 일시에 5천 부가 팔렸지요. 『분단시선집』에는 총 51명의 시인이 쓴 278편의 시를 수록했습니다. “외세의 영향을 배제하고 분단을 극복하기 전에는 이 민족의 자주독립은 불가능하며, 민족의 해방과 자주독립을 위한 분단 극복의 의지는 주체적 민족 세력의 형성을 통한 민족 통일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지금도 다름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분단의 극복은 무엇보다 시급한 최우선의 민족사적 과제이며 이 과제의 성취 없이는 어떠한 발전과 성장도 일시적이고 부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시며 또 출판하신 책이 있다면?


1984년에 초파일을 맞아 문빈정사(당시 주지 지선 스님)에서 창간한 월간 『무등』지가 있습니다. 제가 제안했고 이어서 무등민족문화회를 창립해 불교가 민중 속으로 들어가 시대와 함께 역사와 함께 호흡하기를 바랐습니다. 민족·민주주의 문제를 이론과 실천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취지였지요.


-늘 현장에 밀착해 대중과 호흡하는 길을 지향해 오신 듯합니다. 그와 관련한 다른 활동이 있으셨다면?


1985년 당시 한국 민주화운동 내부에서 제기된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 때입니다. 광주에서 시민 대중과 함께하고자 그해 12월 2일부터 8일까지 광주 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7층 대강당에서 민족문제 대강좌 및 민족주제서화전을 개최했습니다.


강좌에는 민두기(서울대 동양사학), 신용하(서울대 사회학), 박현채(경제학자), 이대근(성균관대 경제학), 최원식(인하대 국문학), 박태순(소설가), 이기홍(민족운동가) 선생 등이 연사로 함께했습니다. 같은 시기 가톨릭센터 2층 가톨릭 미술관에서 있었던 민족주제서화전에는 김철수(독립지사), 허건(동양화가), 구철우(서예가), 송성용(서예가), 황욱(서예가), 문익환(목사), 조방원(동양화가), 김형수(동양화가), 박행보(동양화가), 송건호(언론인), 백기완(사회운동가), 이호철(소설가), 김규동(시인), 천승세(소설가), 김지하(시인), 박태순(소설가), 문병란(시인), 이돈흥(서예가), 이규형(서예가), 김준태(시인), 송수권(시인), 신경호(화가) 등 다수의 사회 문화계 인사가 참여했습니다.


1986년에는 다산학연구원 상임이사로 재임하면서 다산 정약용 선생 서세 150주년 기념으로 『다산학논총』을 펴냈어요. 다산 정약용 선생 관련 연구 논문을 모아 집대성한 책이었습니다.


또 1987년 불교 민주화운동과의 연관 속에서 지선 스님, 학담 스님 등과 함께 6월항쟁에 주도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지선 스님 구속 이후 6월 19일 원각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지요. 6·29선언 이후 본업인 출판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1987년 8월 『북한방문기』, 『통일연대 사업에 대하여』 등을 통해 북한 바로 알기 운동에 동참했지요. 그 후 1987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자로서 한 역할을 했지요.


-1988년에 김남주 옥중시집 『조국은 하나다』를 출판하셨는데, 정보기관의 도청, 미행이나 도서 강탈이 계속되던 시기였을 텐데요?


도서출판 남풍에서 1987년 6월항쟁 후인 8월에 당시 남민전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던 김남주 시인의 옥중시집을 박 선생, 김희갑, 남평오 선생 등과 함께 기획 추진해 펴냈습니다. 시인이 요청한 『조선은 하나다』를 『조국은 하나다』라는 제목으로 제가 바꿔 붙였고요.


당시 많은 분의 도움으로 감옥에 있는 김남주 시인의 원고를 받을 수 있었지만 과정은 험난했지요. 원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원본 원고를 장독대에 넣어 묻어 놓고 네 편의 복사본을 여러 곳에 분산했습니다. 1987년에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김남주 시인이 1988년 8월 ‘광복절 특사’를 지켜보고 출간해 줄 것을 바랐기에 1988년 8월 28일에 초판을 상재했습니다. 김남주 시인이 번역한 하이네, 브레히트, 네루다 시선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도 함께 펴냈지요. 『조국은 하나다』 초판, 재판, 삼판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합쳐 4만 부 정도가 판매됐습니다. 김남주 시인은 그 후 1988년 12월 하순에 출소했고 제가 받아 놓은 많은 양의 옥중 시를 남평오 당시 편집장과 함께 해남 자택으로 찾아뵙고 전했습니다. 출옥 후에 나온 여러 시집도 그렇게 해서 나왔지요.


-1980년대에 발행하신 책을 조금 더 소개해 주시지요.


1988년 2월 간행한 『레닌과 아시아민족해방운동』(도서출판 남풍)과 1988년 3월 『민족자주학교』, 『통일국가론입문』, 5월에 『5·18민중항쟁 비망록』, 『혁명 광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김세진·이재호 추모문집), 월북시인 『조운문학전집』, 6월 6·10, 8·15남북학생회담 성사 투쟁 자료집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전대협학술부 엮음), 같은 해 8월 『북한 사회의 새인식』(전대협학술부 엮음), 가르시아 로르까 시집 『시민군』(이경순 외 역), 『무엇을 할 것인가』(체르니셰프스키) 1, 2 등을 연이어 발행했습니다.


1989년 4월 제1회 5·18민중항쟁 학술심포지움 때 송기숙 교수의 요청으로 학술회의 경비를 전액 후원함과 동시에 무크 『역사와 현장』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1991년에는 『사회평론』을 창간하셨는데 그 목적과 지향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전국 단위의 진보적 정론지를 발행하고자 한국 사회연구소(조희연, 정태인, 박형준, 정대화 등)와 협의하면서 박호성(서강대), 김세균(서울대), 강정구(동국대), 안병욱(가톨릭대), 유홍준(저술가) 선생 등과 함께 변형윤(서울대), 강만길(고려대), 박현채(조선대), 김중배(동아일보 편집국장), 최장집(고려대) 선생 등을 편집자문위원으로 모시고 월간 『사회평론』을 서울에서 1991년 4월에 창간했습니다.


끈질긴 국민적 투쟁으로 열린 민주화의 길이 매우 더디고 오히려 역진의 기미마저 보이던 때, 냉전 체제의 해체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에의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결과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체제 경쟁으로 귀결되어 가고 있을 따름이었지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지한 노력은 여전히 봉쇄되었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상황을 주체적으로 타개해 나가야 할 민족민주세력이 통일적인 결집체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1987년 6월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족민주세력은 계속되는 조직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산적 경향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저는 비록 방법의 차이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광범한 민주세력의 확고한 연대 없이는 난관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또 소련 및 동유럽의 변혁 운동이 전 세계 진보적 지식인들과 사회운동에 커다란 이념적 충격을 주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현존사회주의’의 해체는 사상 및 학문마저도 냉전적 획일성의 제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지적 상황이 돌파되기 시작하는 순간에 몰아닥친 것이지요. 그렇게 사상적 혼란이 증폭되면서 한편에서는 패배주의와 청산주의가 배태되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관성적 옹호론이 대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새로운 사상적 좌표를 재구축하고자 하는 전투적인 노력이 진지하게 시도되었지만 숱한 의견의 불일치와 불완전한 인식, 혼란스러운 논쟁은 불가피했지요. 그러나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만 현실을 선취할 수 있는 사상과 이론이 생산될 수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월간 『사회평론』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연대의 산물이었습니다. 세계사적 대전환기를 사회적 진보의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실천적으로 동참하고, 우리의 현실을 민주주의와 조국 통일, 민중적 사회의 대로로 들어서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를 자원했어요. 그러한 역할이 구체적인 현실문제에 대한 민족민주세력의 심화한 인식과 정치적 연대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게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또 『사회평론』이 올바른 사상이론적 좌표를 구축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논쟁과 담화가 생산성과 현실 적합성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했고 실제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었고요.


단순히 부정적 현실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잡한 모순구조를 이론적으로 해명하고자 했습니다. 현실적 이론과 현실의 통일을 추구한 것이지요. 당시 월간 매체들이 그러한 현실적 요청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사회평론』 창간 기획물로 연재를 시작한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사회 활동가는 물론 수많은 대중 독자들의 큰 반응을 얻었지요. 그리고 1993년 2월 당시 창비사에서 간행된 박노해 시인의 옥중시집 『참된 시작』도 박 시인의 요청으로 원고를 제가 창비에 가지고 갔지요.


그야말로 광범위한 지식인들의 연대사업으로써 ‘전진을 위한 연대’, ‘연대를 위한 전진’을 이루고자 『사회평론』을 간행했고, 말씀드렸던 역사적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전력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깊은 만남도 1991년 12월 하순 하루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월간 『사회평론』을 그만두고 이후 1993년 광주에서 출판 및 서점운동에 몸담았습니다. 출판문화와 서점, 출판업의 선진화를 위해 일신문고를 설립하는 데 기획·자문의 소임을 맡았지요. 현재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대형 서점이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앞선 출판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일본에 현장 스케치를 갔지요. 그리하여 서점, 전시, 카페 공간이 있는 당시로써는 파격적이고 진일보한 공간 등을 임태환 회장, 전문가들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즈음 월간 『사회문화리뷰』를 창간해 3년간 발행하였습니다. 월간 『사회문화리뷰』는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자진 폐간하였습니다. 속칭 ‘김대중 잡지’로 불리며 김대중 정계 복귀를 논리적으로 지원하며 나라 안의 지도자, 활동가 및 ‘양심수’들에게까지 보급, 발송했지요.


그 후로 귀촌해 저술 활동에 주력하면서 정해숙(전 전교조위원장) 선생을 모시고 청화 큰스님의 사상과 철학을 널리 알리고자 월간 『금륜』(성륜사 발행)지를 발간해 편집 책임을 맡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훌륭한 수행자이신 청화 큰스님께도 깊은 감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화 큰스님 어록 『진리의 길』, 일대기 『성자의 삶』, 불교사상사전 『이치로 깨달으며 닦아야』 등 청화 큰스님의 일대기와 가르침을 정리한 다수의 책을 엮었습니다.


-월간지 『아시아문화』와 그간 엮으신 단행본을 소개해 주신다면?


2014년 5월 월간 『아시아문화』(아시아문화커뮤니티)를 창간했습니다. 광주라는 한국의 지방 도시에서 아시아문화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월간지를 내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 진입에 즈음하여 등장한 두 가지의 두드러진 추세, 즉 지방화와 세계화의 동시적 진전과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의 현실적 구현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월간 『아시아문화』는 두 가지의 지향점을 갖고 출범했습니다. 자유로운 담론의 장을 통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아시아의 문화적 콘텐츠를 집적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모으고자 했습니다. 또 하나, 지정학적 측면에서 갈수록 세계적인 전략적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평화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40호째 발간한 월간 『아시아문화』는 평화의 아시아를 위한 목표를 갖고 연대의 창, 공존의 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간 엮은 책으로는 『김대중 어록』, 『위대한 한국민, 전진하는 역사』, 『김대중 대화록』, 『정의로운 역사 멋스러운 문화』 등이 있습니다.


『김대중 어록』과 『김대중 대화록』(전 5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전 저서와 연설문, 대화문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사상 정신이 담긴 정수만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특히 2018년에 출판한 『김대중 대화록』은 1971년부터 2009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이 펼친 인터뷰, 강연, 질의응답, 토론을 총화했습니다. 특히 지명, 인명, 용어 등의 오류를 바로잡는 데 심혈을 경주했습니다. 원고지 15,000매, 총 3,320쪽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시민대중, 언론인, 석학, 지도자들과 나눈 자유자재한 대화 170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은 세 가지 면에서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첫째, 삶이 곧 역사였던 김대중 대통령을 둘러싼 한국 현대사와 정치 현실이 담긴 사료로서의 가치입니다. 다양한 사회 계층과 나눈 대화 속에 녹아든 한국 현대사의 파노라마가 생생한 육성을 통해 펼쳐집니다. 둘째, 민주주의, 인권, 평화, 통일, 경제, 외교 문제에 대한 해법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대화는 적과도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선명한 구상과 해법이 담긴 대화로써 설득해 냈습니다. 셋째, 김대중 대통령이 평생 견지했던 사상과 철학, 신념과 열정, 지도력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이 책은 세계적 인물인 김대중 대통령의 사회정치적 의식과 사상정신적 세계 연구, 한국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위대한 한국민, 전진하는 역사』(2016) 박근혜·최순실 세력 퇴진 시국선언문 모음집입니다. ‘최순실 게이트’,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박근혜 게이트’가 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한 이래로 수백만이 연일 거리로 나서 퇴진을 외치는 동시에 대학가와 학계, 노동계, 언론계 등에서 연쇄적으로 시국선언을 앞다투어 발표해 왔습니다. 현대판 ‘시일야방성대곡’이라 할 수 있었지요. 선언의 내용과 강조점은 다양하지만 관통하는 핵심은 다르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군주국이 아니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공화국임을 준엄하게 선포하는 것이며, 더 늦기 전에 백척간두의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진심 어린 제안들입니다. 책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10월 18일 발표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에서부터 12월 6일 애니메이션·캐릭터산업계 단체들이 발표한 ‘정부에 묻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27편(제1편 시민사회 115편, 제2편 대학·교육 102편)의 시국선언문과 탄핵소추안, 그리고 48쪽에 이르는 촛불집회 화보 등을 담았습니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정영일 동강대 교수·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 김준형 현 국립외교원장도 힘을 보탰습니다.


『정의로운 역사 멋스러운 문화』(증보판, 2019)는 광주·전남의 역사와 문화를 개괄한 책으로 이번 11월에 증보해 펴냈습니다. 민족사상(上) 광주·전남 사회가 이룩한 정의로운 역사적 성과와 멋스러운 문화적 업적을 주체적 입장에서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그 참모습을 널리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007년 김충렬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이화 전 역사문제연구소장·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등 35인의 필진이 2년간 집필해 간행한 이 책은, 이번에 다시 펴내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상임이사, 최영태 전남대 교수의 글을 증보해 실었습니다.


역사는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됩니다. 주류 역사가가 관심을 두지 않은 과거의 기억은 역사책에서 생략된다. 광주·전남의 역사가 ‘망각으로서의 역사’로 우리 민족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전라도 정도定道 천 년을 맞이하였으나 지배 세력이 조작·기술해 놓은 왜곡된 광주·전남의 상像을 극복하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구나 속성(速成) 정보를 좇는 데 길들여져 통사를 탐독하고 역사를 통찰하는 힘이 갈수록 결여되는 시대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전라도는 어떤 곳인가! 올바른 역사관을 바탕으로 희망찬 민족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역사 기록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정의로운 역사 멋스러운 문화』가 그 한몫을 담당하길 기대하며 광주·전남 역사를 분야별로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진일보한 미래를 견인하는 데 강조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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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책을 만들 때 ‘자오’(自娛)의 마음을 갖습니다. 스스로 즐기며 책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책을 기획할 때 세 가지에 비중을 둡니다. 지금, 여기에서 필요한 ‘시대성’과 역사의 진보를 추동할 수 있는 ‘사상성’, 그리고 광주·전남의 특수성과 한국사회, 전 세계적 보편성을 일치하는 작업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 민족자주, 평화세상, 김대중 사상 등의 거대 담론 의제를 가지고 계속 공부하며 저술, 출판 사업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호남취재본부 김춘수 기자 ks766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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