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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쌀 수입' 국별 쿼터 제도로 전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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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쌀 수입' 국별 쿼터 제도로 전환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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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시장을 관세화해 개방한 지도 4년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40만9000t의 의무 수입 물량 외의 추가 쌀 수입을 철저하게 차단할 수 있었던 것은 513%의 높은 관세율을 적용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관세화 조치의 국제법 합치성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차원의 검증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호주, 태국, 베트남 등 쌀 수출국들이 이의를 제기한 후 압박해오고 있어 최악의 경우에는 WTO 패널에 제소당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513%를 도출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사용한 각종 국내외 쌀 가격 관련 자료들의 적절성과 계산 방식의 정당성이 모두 국제 재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우리와 유사하게 쌀을 관세화한 일본과 대만의 경우를 봐도 4년6개월 이상으로 WTO 검증 완료를 지연시킨 사례가 없다.


조속히 WTO 검증 과정을 종결하고 513%의 관세율을 국제법적으로 확정받기 위해서는 이의 제기 국가들과의 타협이 불가피하다. 이들 국가의 요구 수준을 참작해 의무 수입 물량을 국가별로 적절히 배분해주는 국별 쿼터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효과적인 해결 방안이다. 어차피 40만9000t의 외국산 쌀은 5%의 낮은 관세율로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마당에 이 물량의 수입 방식만 바꿔 국가별 쿼터를 배분해주고 이들 국가에서 제기한 이의를 철회시킬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성공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WTO 협정에 따르면 총 의무 수입 물량을 모든 수출국이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이나 실질적 이해관계국들과의 합의를 통해 국별 쿼터를 설정해 국별 수출 권한을 배분해주는 방식이 모두 허용된다. 미국과 중국, 호주 등 쌀 수출국들은 자국의 수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인 국별 쿼터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들 국가와의 적극적 합의를 통해 이의 제기 철회를 조건으로 수입 쿼터를 설정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수출국들의 이의 제기 철회를 조건으로 국별 쿼터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합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해 조약 형식으로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조약은 WTO 협정상 확정된 의무 수입 물량의 수출국별 배분에 관한 후속적 합의인바, 추가적인 재정적 부담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 체결도 아니므로 국회의 비준 동의는 불필요하다. 약식 조약 형식으로 행정부 차원에서 신속히 합의하고 시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 검증 종료 후 쌀 수입제도를 운영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다. 수입 쌀의 품위 및 규격 기준과 입찰 가격 상한 기준 등 합리적인 수입 요건을 부과할 수는 있으나 이것이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특히 수입 쌀의 용도를 가공용으로만 한정해 밥쌀용 쌀을 배제한다든지, 국별 쿼터 소진을 방해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국제 분쟁을 야기해 국별 쿼터 합의 자체의 정당성이 문제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신(新)보호주의 열풍 속에서 강대국에 의한 무역 보복이 일반화되고 있는 국제 교역 현실을 감안할 때 다자 간 합의는 소중하다. 특히 신보호주의를 주도하고 있고 쌀 교역 관련 최대 이해관계국 중 하나인 미ㆍ중이 포함된 다자 합의의 가치는 더욱 부각된다.  우리 쌀 농업을 보호하고 농업의 비(非)교역적 가치를 지키는 일은 친미ㆍ반미 및 친중ㆍ반중 논쟁 또는 한국 농업의 특수성만을 외쳐대는 데 있지 않다. 국제 현실 속에서 모든 이해관계국의 이익을 수렴해 창조적인 대안으로 담아내는 일이 그것이다. 현실 고수 정책으로 일관해 쌀 관세율 513%의 불법성에 대한 공격을 무한정 자초하기보다는 창조적 파괴를 위한 대안을 주도해 안정적 국제 합의를 형성하고 무역 보복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합의가 아무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누군가는 더 행복해지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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