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은성수 금융위원장의 파격, 새 바람이 될까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개인적 질병까지 포함해서 저에 관해서는 모든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왔지만 가족(관련 자료는)은 사생활도 있고 해서 조심스러웠던 부분도 있고. 잠깐만요, 말씀하신 것 다 제출하겠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다 미국에서 나와서 전형 등에서 국내와 아무 관계가 없거든요.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할까, 국적은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왜 문제가 나오는지 의아했습니다."
지난 8월29일 당시 후보자였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서두에 한 말이다. 일부 야당 의원이 자녀 관련 자료 제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은 위원장은 서울대를 나와 미국 하와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와 기획재정부에서 요직을 거쳤고,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세계은행 상임이사와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했다.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의 길을 밟아온 셈이다. 청문회는 그가 대중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자리다. 그런데 이력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세련되기보다는 투박했고, 속내를 감추거나 돌리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실 그날 금융위원장 청문회도 '조국 청문회'에 가까웠다. 하지만 간간이 은 위원장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갑자기 재산이 불어났는데 3억원가량의 출처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은 위원장은 "월드뱅크(세계은행) 퇴임할 때, 2016년 1월에 퇴직금으로 20만달러 받았다"면서 "바로 이 자리에서 (근거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다소 격앙돼 보일 수 있었다. 결국 "의원 질의에 따지듯 답변하는 건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는 지적을 받았고, 은 위원장은 사과했다.
시작은 그랬다. 걸어온 길은 전형적이지만, 스타일은 평범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줄곧 그래왔든 기재부 출신 관료가 다시 금융위원장으로 온다는 데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고,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취임 이후 파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과의 갈등은 금융위에 대한 가장 큰 우려 중 하나였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직접 금융감독원을 찾아가 윤석헌 원장을 만났다. 금융위원장이 금감원을 공식 방문한 것은 무려 4년7개월만이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굳이 찾아갈 필요까지 있느냐"는 반대 목소리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다시 한 팀이 돼서 소통을 하면 오해가 없어지리라 기대한다"고 말했고, 윤 원장은 "은 위원장의 방문을 계기로 금융권과 감독원, 감독원과 금융위 사이의 문턱이 다 닳아 없어져 앞으로는 소통이 잘 되고, 소비자 보호와 기업 지원 활동이 잘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는 은 위원장이 격식이나 권위보다는 실질적인 성과를 중시한다는 인상을 줬다. 금융위 내부적으로도 일하는 문화의 파격을 내세웠다. 간부회의는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별도 보고자료 없이 진행하고, 주말에 준비하지 않도록 매주 금요일에 회의를 열기로 했다. 직원들에게도 보고서 작성에 불필요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며 자료 작성 간소화와 구두보고를 권장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강조했다. 은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주어진 연가는 모두 사용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며, 충분한 휴식을 통해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조직문화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취임과 함께 숙제를 받아들었다. 금융시장 안정과 혁신금융 가속화가 금융위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데, 해외금리 파생결합상품(DLS) 사태가 터지면서 안정성과 신뢰에 금이 간 상태다. 이미 금감원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일부 불완전판매와 은행 내부 통제 결함 등이 밝혀졌다.
이와 관련 은 위원장은 "금융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금융업의 근간은 신뢰에서 비롯되는 만큼 부당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없는지 잘 살피고, 공정한 금융질서 확립을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관료 출신 금융위원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금융산업 육성에 치중해 은행 등 금융회사의 편을 들 것이란 우려를 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이번 DLS 사태를 계기로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와 직원 평가 시스템 등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를 근원적으로 방지하면서도, 금융산업 경쟁력을 저해하지 않는 묘수가 필요하다. 이는 은 위원장을 실질적으로 평가하는 첫 잣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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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반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금융이 새로운 혁신의 동력이 되도록 추진하고 있다. 은 위원장은 금융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혁신금융에 보다 속도를 내고,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를 빠르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은 위원장이 안정과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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