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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풍과 폭염, 그리고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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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태풍과 폭염, 그리고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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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올해의 결실입니다. 그러나 지난 주말 태풍 링링 앞에서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거두는 결실이 상처와 고난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이 가을 사과 한 알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봄에 여리게 분홍빛이 돌던 꽃이 져야 했고 지난여름 폭염도, 이번 태풍도 견뎌내야만 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그리고 사람끼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사람의 결실도 있습니다. 올해도 하루, 하루를 놓고 보면 고개 넘어 고개였습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고생이 고생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고개 넘어 삶이라는 산으로 올라가는 여정이고, 삶의 축적이었습니다.


올해 여름은 다행히 비가 자주 오면서 지난해처럼 폭염이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줬습니다. 올해 폭염 일수는 13.7일로 지난해의 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고, 비가 온 날은 지난해 여름보다 많아서 3일에 하루꼴로 비가 왔습니다. 기후 변화로 계속해서 더워지는 것은 과학적 추세이지만 그 굴곡 속에서 올해는 다행히도 더워지는 추세에서 조금 비켜 있게 됐습니다.

태풍은 지난 7월부터 5개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줬습니다. 7월과 8월 태풍은 우리가 견뎌낼 수 있는 정도의 비를 내렸고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 상륙하자마자 약해지면서 피해도 적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의 문턱에서 이번 태풍 링링은 지난 7일 새벽 흑산도에서 풍속 54.4m/s를 기록하는 등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중 순간풍속 5위를 기록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서쪽 도서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태풍으로 피해를 보면 자연은 자연의 자체 시계가 따로 있고, 결실 앞에서 자연의 시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단지 우리 사람의 힘으로 준비하고 다시 회복하는 시간으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들판과 밭의 결실은 자연에 맞서는 사람의 결실입니다.


9월이 되면서 매미 소리가 점차 작아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며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자주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 돼야 성체가 돼 번식을 시작하고 알을 낳습니다. 가을은 완성의 계절이자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식물이 씨앗을 만들고 겨울을 나듯, 귀뚜라미도 알을 낳고 겨울을 보냅니다. 지금 듣는 귀뚜라미 소리는 1년을 거쳐 돌아온 귀뚜라미의 소리입니다. 잠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봄과 여름을 거치며 성체가 돼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다음 세대를 통해 겨울을 지내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이 지나간 후, 가을 아침 이슬에 날개가 젖어 있는 잠자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가을은 마무리의 계절이자 다음 세대가 다시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기상청의 가을은 여름과 겨울의 연결입니다. 가을에도 여름같이 다급하게 나타나는 폭우, 태풍 예보와 함께 다가올 겨울에 대한 대비도 하고 있습니다. 추수가 끝나는 들에 서리가 저승사자처럼 내리면서 계절 변화의 엄중함을 알려줄 것입니다. 가을 너머로 대기 주자인 겨울을 보고 있습니다. 겨울도 휴식기가 아니라 여름의 대척점인 것처럼 시소 양 끝에 있는 계절이라고 보면 됩니다. 여름의 시작인 장마가 집중호우와 함께한 것처럼 첫눈의 시작은 한파의 시작일 수도, 대설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겨울도 균형 있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이번 가을에 준비할 것입니다. 힘들었던 올해 여름이 지나고 자연의 결실과 가족의 만남을 기다리듯 기상청도 지난 계절을 마무리하고 다시 겨울을 준비하며 몇 년 후를 준비하는 연결의 계절을 보낼 것입니다. 이번 태풍을 이겨내면서 결실이 함께하는 추석이 되시기를 빕니다.

김종석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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