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 한일협정, 살벌한 ‘입막음’…대검 꽂은 무장군인 대학난입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전쟁의 공포와 다름없었다. M1소총에 대검을 꽂은 무장군인들이 교내에 무단으로 들어왔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군용 트럭 등을 타고 온 이들의 수는 200여명. 대학생들은 이들의 기세에 눌려서 학교 뒷산으로 몸을 숨겼다.
1965년 8월26일 오후 연세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현장을 구경하던 시민들도 연행됐다. 현장을 취재하던 사진기자들은 카메라가 부서졌고 필름도 빼앗겼다.
고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고대생들이 교문을 벗어나 안암 로터리까지 진출했다. 최루탄에 밀려 다시 학교로 돌아가자 10여대의 군용차를 타고 온 무장군인들이 교내로 진입했다. 일부 학생들은 달아났지만 연행자도 수십 명에 달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1965년 서울 대학가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학교에 난입해 학생들을 마구 연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대학가를 중심으로 폭넓게 확산되던 저항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다.
1965년 8월14일 당시 집권 여당인 공화당 주도로 한일협정비준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의 총사퇴 저항도 이를 막지 못했다. 독립운동 경험이 있는 공화당의 일부 의원은 ‘기권’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은 논의의 시작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1964년에는 굴욕적인 한일 회담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 1만여명이 광화문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권 퇴진의 목소리가 뜨거웠다. 당시 정부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잡아갔다. 언론 출판의 자유를 차단했고 집회 시위도 금지됐다. ‘6·3 항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집권세력은 반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일협정비준안은 국회를 통과했고 결국 시행됐다. 일본은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평가했지만 국내에서는 논란의 불씨가 아직까지 꺼지지 않았다.
한일협정의 뼈대는 일본이 3억 달러의 무상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내용이다. 문제는 개인의 청구권 소멸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강제징용 피해자 등의 청구권은 해소되지 않았기에 일본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법적인 대응을 이어갔다. 소송이 제기된 이후 13년 8개월 만에 결과가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0월30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독도사랑세계연대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며 아베 총리가 그려진 현수막을 밟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원본보기 아이콘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965년 한일협정의 배상청구권 소멸 주장을 대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법원은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965년) 청구권 협정에 의해 우리 국민의 일본 및 그 국민에 대한 배상청구권 자체가 소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받아들인 셈이다.
1965년 한국과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주도한 한일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경제 제재’라는 보복의 수단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힘의 논리로 역사의 진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5년 3월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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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정리가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사이의) 화해를 위한 전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과오를 공유하는 당사국으로써 고언(苦言)을 아끼지 않은 셈이다. 전쟁 당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주변국과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한다고 그 당시의 잘못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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