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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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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담뱃갑 은박지를 마다하랴, 우유갑이면 또 어떠랴. 교도소 운동장에서 주운 '녹슨 못'으로 꾹꾹 눌러 쓰다 보면 시가 되는 것을…. 백지와 연필 한 자루만 안겨주면 좋으련만. 권력의 눈엣가시에 그런 '호사(豪奢)'를 제공하겠는가. 10년의 수감생활, 그곳에서 써 내려간 시만 해도 500편.


녹슨 못의 출렁임에 실린 운율은 '저항의 메아리'가 돼서 세상을 적셨다. 영원한 '저항시인' 김남주. 1994년 마흔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천하는 문인의 삶을 이어갔다. 그의 시가 1980년대 암울한 시절을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정서를 관통했기 때문일까. 때로는 격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때로는 삭막할 정도로 메마른 그의 시에 매료된 이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시절은 민족과 해방과 민주와 노동을 노래하던 이른바 '민중가요 전성시대'이다. 김남주의 시는 노래가 돼서 대학 교정과 거리 그리고 어느 허름한 술집에 잔잔히 스며들었다. 찌그러진 양은 술잔에 막걸리 기운이 녹아들 무렵, 두 눈 지그시 감고 읊조리며 부르던 노래도 있었다.


[초동여담] 시인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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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노래'라는 제목의 김남주 시를 토대로 만들어진 '죽창가'도 그중 하나다. 그 시의 기원은 전남대생 시절인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남주는 '10월 유신'의 충격과 분노에 젖어 '저항의 거사(巨事)'를 준비했다. 정신력을 다지고자 그가 찾은 특별한 곳은 녹두장군 전봉준 유적지였다. 동학농민군이 관군에 맞서 대승을 거둔 '황토현', 지금의 전북 정읍이다.

김남주는 그곳에서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흰옷을 입은 노인들이 '비문'을 쓰다듬는 모습. 물끄러미 들과 하늘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던 노인들의 모습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풍진 세상,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자 그들도 여기 왔을까."


김남주는 당시 심경을 시로 지었는데 그게 바로 '노래'다. 청와대 누군가가 페이스북에 노래를 올린 이후 뭇매를 맞으면서 그 존재가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게라도 시인 김남주를, 그의 '노래'를 되뇌게 됐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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