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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우리 인식의 '미싱 링크', 중동태의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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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굽는 타자기] 우리 인식의 '미싱 링크', 중동태의 세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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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우리는 갓난아기 때부터 걸음마를 배우고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아무 의문 없이 걷고 있다. 걸음이라는 행위는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것이고, 걸음에 내 의지가 작용했다는 데에 그 누구도 의문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걷는 행위를 잘 뜯어보면 내 의지가 작용하는 행위라고 칭하기가 민망해진다. '걷는다'는 것은 인체 내 200개 이상의 뼈와 100개 이상의 관절, 400개 이상의 골격근을 동시에 써야만 가능한 동작인데, 과연 내가 걸을 때마다 의지를 활용해 뼈와 관절과 골격근을 움직이는 걸까? 이미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이 동작을 해 왔고 그냥 몸의 프로그램이 짜인 대로 움직인다고 보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복잡한 '걷기' 동작을 내 의지가 하나하나 컨트롤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하고는 있지만,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동작인 것이다.

저자인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 부분에 집중한다. 우리는 행위 이전에 의지가 있어 의지(걸어야 한다)→행위(걷는다) 순서로 어떤 행동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행위 이전에 의지가 최초로 작용한다는 데 의문을 표한다. 철학책임에도 뇌신경과학 연구를 끌어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대 뇌신경과학은 뇌 안에서 행위를 하기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 먼저 만들어진 후에야 행위 의지가 의식 안에 출현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행동을 표현할 때 쓰는 동사에는 '내가 행하고 있지만 별다른 의지 없이 이뤄지는 행동'을 표현하는 말이 따로 없다. 능동과 수동으로 크게 갈라져 있는 현대 언어 체계로는 쉽게 이 행동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 언어는 이런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단어 체계가 없다.


저자는 여기서 '이런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언어 체계 속에서 '중동태'를 끄집어낸다. 중동태는 능동태와 수동태 그 사이 어디엔가 있는 상태다. 고대 그리스 언어의 초기에는 수동태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동태와 능동태 동사가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돼 있었다. 중동태와 능동태 간의 관계도 달랐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대립은 '하느냐 당하느냐'의 문제가 주가 되지만, 중동태와 능동태 간의 대립은 '주어가 과정의 바깥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의 차이다.

이는 행동에 반드시 의지를 결부시켜야 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의지라고 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몰랐다. 능동태와 중동태가 대립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세계는 의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중동태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수동태가 차지하게 된다. 행위가 누구에게 속하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를 묻기 위해서는 중동태는 적합하지 않은 단어이기 때문이다. 능동태와 수동태의 대립 속에서 우리는 능동태의 주체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저자는 이를 '심문하는 언어'라 부른다.


누군가는 심문하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만약 어떤 행위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문제를 야기한 행위자를 찾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눠지는 세계를 선호한다. '사태가 발생했지만, 책임질 만한 잘못을 한 사람은 없다'는 설명은 우리를 분노하게 된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문제의 근원이 존재할 것이고 이를 응징함으로서 문제의 근원을 없애버려야 속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심문하는 언어만으로는 설명하고 서술할 수 없는 행위들과 현상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현대인들이 그 언어를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중동태 단어는 우리 언어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억압당한 채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다. 일부 철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이 중동태의 존재를 지적하고 계속 활발한 논의 중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동사 체계는 결국 능동과 수동의 관계 속에서 정립된다. 그래서 저자의 논의는 의미가 있으면서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


그는 하이데거, 들뢰즈, 스피노자 등 중동태 개념을 현대 철학자들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려 한다. 특히 스피노자의 '내재 원인' 개념과 중동태의 개념을 연결시킨다. 내재 원인은 신ㆍ자연을 설명할 때 쓰는 개념이다. 신은 무한하고, 신 외부에서 작용해오는 것 없이 자기 내부에서 생성되고 실현되는 상태이기 때문에 중동태로 신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같은 맥락에서 기존의 능동과 수동 개념에 대해 스피노자의 자유-강제 개념으로 재해석하며 틀에 박힌 능동-수동 대립을 벗어나 보려고도 한다. 행위자에 따라 능동-수동을 가르는 것이 아닌, 행동이 얼마나 자신의 본성을 표현하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새 능동-수동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절충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당장은 완전히 자유로운 사고가 어려울지라도, 우리 사유 체계를 다시 한 번 고찰하고 중동태의 세계를 알아감으로써 기존보다 좀 더 자유로운 사고에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사실 능동태와 수동태적 언어의 대립 구도가 머릿속에 콕 박힌 현대인으로서는 이 책의 내용을 한 번 읽고 바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고루한 철학 서적들과는 달리 현대 뇌신경과학의 영역까지 언급하는 등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철학 이슈를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들뢰즈ㆍ아렌트ㆍ스피노자 등의 철학을 논하면서 동시에 그리스어 등 고대어의 어원에 대해 논하는 등 철학과 어학의 다양한 영역에 폭넓게 발을 걸치고 있다. 능동과 수동의 대립에만 빠져 있던 우리의 인식에 직격타를 날리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책이다.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박성관 옮김/동아시아/2만3000원>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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