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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영어 대신 침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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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영어가 아니라 침묵을 배웠어.”


지난 주말, 막내 아들과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영어마을’을 지날 때였다. “네가 5학년때 갔다가 조기 퇴소한 영어마을이 저기지? 이제 중학생인데 이번 방학때 다시 갈 생각 없니?” 하는 물음에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2년 만에 들은 사연은 이랬다.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해야 하는데 친구들끼리 대화는 대개 10초를 넘지 못했단다. “Good Morning",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Fine, Thank you". 여기까지 말한 후엔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간혹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도 다른 아이들과 긴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전반적인 침묵 상황은 이어질 수밖에 없단다.


2년전 9박10일 일정으로 영어마을에 들어갔던 아들은 그렇게 해서 3박4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공식적인 핑계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과 엄마가 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루 종일 강제된(?) 침묵이었다고 한다.


정부가 금융산업 혁신을 위해 밀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육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 1차로 선정된 두 곳 중 카카오뱅크는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케이뱅크는 적자 확대에 자본비율이 급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주주인 KT의 자본확충이 시급하지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막혀 이마저 여의치 않다 .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에는 제3인터넷전문은행 인가가 무산됐다. 자본력을 앞세운 키움뱅크와 혁신성을 앞세운 토스뱅크가 도전장을 냈지만 두 곳 모두 외부평가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키움뱅크는 혁신성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토스뱅크는 주주 구성이 발목을 잡았다. 낙관론자들은 두 곳 모두, 다소 보수적인 이들조차 한 곳은 통과할 수 있으리란 봤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동반 탈락이었다.


지난해 9월 인터넷은행 특례법을 통과시키면서 산업 진흥을 독려했던 정부 여당은 예기치 않은 결과에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을 불러 “정부의 의지 부족”을 질타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자리에서 정부 여당은 대주주 적격성 문제 등 인터넷전문은행 진입장벽을 낮추는 안을 고민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박한 점수로 신청자들을 모두 탈락시킨 외부평가위원 교체를 검토하자는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에 탈락한 두 곳에 ‘원포인트 레슨’을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점수가 되는 수험생이 없으니 기준을 낮추고 채점자를 바꾸고 과외를 해서라도 합격자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세 번째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하면 금융혁신이 이뤄질 수 있을까다. 유력후보였던 키움뱅크를 탈락시킨 외부평가위원의 결정적 질문은 “신용정보법으로 고객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키움뱅크는 28개 주주사 고객을 다 합치면 1억명이라며 이를 활용해 신용평가 모델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냈었다. 선발주자인 케이뱅크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걸려 은행업의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자본 확충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이 핀테크 확산 및 기존 은행권에서 커버 안되는 중신용자들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금융권의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차 사업자 선정때 자격 시비가 있던 케이뱅크에 인가를 내준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감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한다. 성공을 위해선 제반 여건을 갖춰야 한다. 대주주 문제의 발목을 잡는 공정거래법, 새로운 서비스를 위해 넘어야 할 신용정보법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영어만 사용하는 영어마을에 아이를 보낸다고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시작하는 건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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