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이재용 부회장이 그리는 미래 삼성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1993년 6월7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했다. 이 회장은 경영진에게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라며 대대적 혁신을 요구했다.
이른바 '신(新)경영 선언'이다. 당시 이 회장은 취임 5년 차였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거머쥔 지 5년 만에 신경영 선언을 한 배경은 해외시장에서 삼성의 처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8㎜ VTR 신제품을 시장에 내놨던 1993년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매장을 찾은 이 회장은 GE, 소니 등에 밀려 진열장 한 귀퉁이에서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 쓴 삼성 제품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해 6월엔 세탁기 사건도 터졌다. 세탁기 뚜껑 부분의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칼로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사내 방송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 나왔고, 마침 독일 출장길에 오르던 이 회장은 임원들을 총집합시켰다.
신경영 선언 후 삼성은 180도 달라졌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일취월장(日就月將)'. 변화된 삼성엔 이 같은 사자성어가 제격이다. 삼성전자는 신경영 선언 이듬해에 애니콜 브랜드 휴대전화를 처음 선보인 데 이어 세계 최초로 256Mb D램 개발에 성공했다. 1996년에는 1Gb D램을 내놓으며 전 세계 반도체 리딩 기업의 기초를 다졌다.
국내 기업 문화 혁신도 선도했다. 기업들의 출퇴근 문화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이른바 '7ㆍ4제(오전 7시 출근ㆍ오후 4시 퇴근)'를 시행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26년간 삼성전자의 경영 성과는 신기록의 연속이었다. 물가상승률 변수를 제외하더라도 1993년 40조9600억원이었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879조1883억원으로 20배 이상 늘었다.
미국 유력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ㆍ발표한 '2018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명단에서 삼성전자는 7위에 올랐고, 전 세계 각국에서 '존경받는 브랜드'로도 선정되고 있다.
놀랄 만한 성과에도, 삼성전자는 오는 7일 신경영 선언 26주년을 앞두고 우울하다. 침울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역성장 리스크, 미ㆍ중 무역 분쟁에 따른 후폭풍,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검찰 수사와 대법원의 이재용 부회장 관련 판결 임박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삼성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 안팎에서 최대 위기 상황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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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지금, 삼성에 필요한 건 26년 전의 신경영 선언을 뛰어넘는 제2 신경영 선언이다. 아버지가 회장 5년 차에 새로운 삼성을 꿈꾸었듯, 경영을 이끌어온 지 5년이 된 이 부회장이 그리는 미래의 삼성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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