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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강한 정부와 민간 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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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프로 스포츠에서 '프런트 중심'과 '현장 중심'이라는 말이 있다. 프런트 중심이 과도한 경우 비전문가 집단인 프런트가 야구단 운영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심한 경우에는 선수 수급은 물론 선수 기용과 포지션 배치까지 지시한다. 감독, 코치, 선수들은 프런트의 눈치만 보게 되고 결국 성적이 추락하고 팬들의 마음도 잃는다. 반대로 감독과 현장의 입김이 강한 경우에는 당장의 승패에만 집착한 나머지 중장기적으로 포지션별로 선수단의 약점을 메우고 신인급 선수들을 육성해나가는 종합적 전략을 펼칠 수 없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프런트와 현장이 각자 전문분야에 집중하고 상시적으로 소통해 단기ㆍ중장기 계획을 점검하고 경기력과 흥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구 중심부에 위치한 서문시장은 전국적인 섬유 도매시장으로 유명하나 도매시장의 특성상 야간에는 인적이 드문 을씨년스러운 환경이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2016년 6월에 개장한 서문시장 야시장은 평일 방문객 2만명, 주말 방문객 5만명 이상, 누적방문객 2000만명 돌파, 경제적 파급효과 4500억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점유율 기준 세계 최고 야시장 등의 기록을 세웠다.  초기에는 난관이 있었다. 기존 점포업주들이 상권 침해와 주차문제, 불결한 환경에 대한 우려로 반대했다. 중재에 나선 대구시는 기존 전통시장과 야시장이 공생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상생의 기틀을 마련했고 야시장 운영에서 공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문화적 요소를 접목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추진했다. 야시장 상인 간 공정한 경쟁 유도와 개방적 문화플랫폼 제공은 서문시장 야시장의 대표적 성공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최근 벤처정책뿐만 아니라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정책 곳곳에 민간 이양 혹은 민간 주도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부의 권한을 시장으로 이양하겠다는 경제정책적 방향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각론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시장 주체들과 국민들은 역대 정부의 멋진 레토릭으로 발표된 정책이 애초의 정책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추진 의지 부족으로 용두사미가 된 것에 너무나 익숙해있다. 이번만은 달라져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변방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의사결정 체계와 기술혁명에 부응하는 산업구조를 갖춰야 하며, 그 핵심은 민간 시장중심의 정책수립과 집행이다. 기업인들을 불러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민간 위원회 몇 개를 만들어서 현장중심의 민간주도라고 표현하면 곤란하다. 실질적인 권한 이양이 이뤄지지 못하고 절차보다는 성과 중심의 정책이 추진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가 실현은커녕 지금껏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공든 탑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감과 절박함이 필요하다.


대체로 정부와 관료집단은 민간부문과 시장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과감한 권한이양을 주춤거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시각에 민간부문은 그들만큼 일사분란하지 않고 너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고 잘 정리된 개조식 문건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불안한 대상일 수 있으나,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하루 빨리 경제정책의 주체를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현장의 절실함에 귀를 열고 사족없이 이를 정책화하는 것이 관료의 역할이다. 대신 정부는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공정한 게임 룰을 재점검하고, 혁신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양극화와 산업 간 갈등에 대비해 분배의 원칙을 강구해야 한다.  

모든 경제현상을 책임지는 것이 강한 정부는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현장과의 끊임없이 소통하며 기업과 경제주체들을 지원하는 것이 강한 정부가 되는 길일 것이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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