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베이징=박선미 특파원] 지난 24일 오전 기자가 출장을 위해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으로 향하던 중 고속도로 맞은편 차선에서 지나가던 차들이 하나 둘씩 멈춰 제자리에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사고가 났나봐요."라고 묻는 기자의 말에 택시 기사는 "아닙니다. 잠시 도로가 통제됐네요. 높은 분이 지나가려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공항과 시내를 잇는 고속도로 옆 가로수 밑에는 25~27일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열린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사실 중국에 있으면 도로통제는 흔히 접하는 일상이 된다. 이달 9일 중국 허난성 정저우를 방문했을 때에도 기자 일행이 탄 단체 버스는 영문 모를 도로통제에 걸려 터널 안에서 20분간 넘게 멈춰 있어야 했다. 중국 최고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높은 분'이 지나갈때마다 도로통제가 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중국인들도 별다른 불만 없이 기다리기 일쑤다.
터널에 갇힌 버스 기사 역시 침착하게 "고위급이 지나가나 보네요"라고 말한뒤 조용히 시동을 끄고 편하게 고쳐 앉았다. "누가 지나가길래 도로통제를 하나"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어야 하나" 등 각종 불만과 항의가 빗발칠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10년전 중국 지방정부 관계자와 각국 언론 기자들이 탑승한 차량이 작은 시내를 통과할때 경찰 사이드카 두 대가 차량을 호위하며 통제된 도로를 달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베이징에 각국 고위급들이 한데 모이는 날에는 항공기 지연, 연착도 각오해야 한다.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27일 오후에는 중국 각 지방에서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들이 줄줄이 3~4시간씩 연착되거나 결항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대일로 포럼과 관련해 "도로통제로 인한 심각한 교통체증을 베이징 주민들에게 안겨줬다"며 고속도로의 많은 구간이 포럼 때문에 도로통제 되고 택시운전자, 통근자들이 끝을 알수 없는 교통체증에 시달려야 했다고 비판했다. 한 베이징 시민은 SCMP 기자에게 "교통경찰은 VIP들만 신경쓴다"고 말하며 "일대일로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지만, 일대일로 포럼이 열린 베이징은 심각한 도로통제로 도로의 연결성이 끊겼다"고 비꼬았다.
중국은 최근 일대일로 참여국 관계자들에도 '특별대우'를 추가했다. 베이징, 상하이를 비롯한 12개 지역 공항과 네이멍구자치구 만주리를 비롯한 6개 도로항에는 일대일로 전용통로가 만들어졌다. 취윈하이(曲云海) 중국 국가이민관리국 부국장은 지난 28일 공안부와 이민관리국의 합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관계자들에게는 출입국 수속을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일대일로 관련 포럼이나 협력 미팅 등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사전에 비자를 발급받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더라도 중국 유관부처에서 승인한 인증 자료로 즉각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된다. 영업일 기준 15일이 걸리는 거류증 역시 5일로 발급시간이 단축된다.
소수의 VIP 편의를 위해 다수의 불편이 감수되는 이런 관행들이 중국에서는 너무나 익숙해 어쩌면 이를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더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다. 어떠한 관행이든 내부 불만만 없다면 크게 문제될게 없을법도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교류하고 연결되는 시대다. 중국의 힘이 세계적으로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지나친 특별대우 관행이 중국과 교류해야 하는 다른 나라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계 곳곳에는 고위급 관료가 지나간다고 해서 지나가던 차가 멈출 정도로 각별한 의전을 수행하는 국가가 많지 않다. 또 그럴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곳도 찾기 힘들다.
베이징=박선미 특파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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