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힘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은 절망의 시대일수록 더욱 빛났다. 대중들은 '어른들'의 입을 쳐다보면서 시대를 살리고 민중을 살리는 말을 기대했고, '어른들'은 또한 그 기대에 맞춰 금강석 같은 정련과 절제의 틀에 감로수 같은 위로를 담아 깨침과 울림의 말씀을 사자후로 토해냈다. 성철 큰스님의 야단법문이 그랬고, 김수환 추기경의 잠언이 그랬다. 이 밖에도 셀 수 없는 선지식과 지사, 언론인들이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겠다'는 각오로 시대의 양심과 정의를 지켜냈다.
독재정권의 하수인들이 온갖 해코지로 입과 귀를 막으려 했어도 어른들의 죽비와 사자후는 거침이 없었다. 그 힘으로 민중은 일어났고 외쳤다. 그 힘으로 바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민주의 가치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켜냈다.
'어른들의 말씀'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온기가 식지 않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 한마디 오도송이 천 번의 법회보다 더 큰 힘으로 사부대중을 깨쳤고 불법으로 돌아오게 했다. "말을 많이 할수록 필요없는 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두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어라" 등 추기경이 남긴 잠언은 '실천'에 방점을 찍은 덕담으로 대중들의 성정을 사랑과 화합, 겸손과 온유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산이 높고 물이 맑으면 산짐승도 순하다는 말처럼, 말의 세계에 '살리는 말'이 주인 노릇할 때는 정의가 강물처럼 흘렀음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된 일인지 '대변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집과 독선, 반목과 분열, 저주와 살기 같은 독기 투성이다. 게다가 요령부득의 잡설과 궤변으로 우리가 지켜내고 가꾸어온 가치와 규범, 합의와 협약마저 훼철하는 데는 어처구니가 없다. 교언영색을 넘어 매국과 망국의 혐의마저 캐묻고 싶을 정도다.
이처럼 말의 세계에 '죽이는 말'들이 주인 노릇 하기 시작하면 덩달아 날뛰는 것이 '양치기 소년'들이다. 이른바 가짜뉴스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무리들의 준동이다. 언론의 얼개를 교묘히 빌어다 쓰는 허언, 망언, 날조와 왜곡이 오늘날 가짜뉴스라는 형태로 틀을 잡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미국 대선 후보로 등장하면서였다. 트럼프는 선거를 치르면서 허위성 정보(페이크 뉴스)를 활용했다. 90%의 허위와 10%의 사실을 버무려 전문가들도 쉽게 판별해낼 수 없는 가짜뉴스를 양산해내는 한편 상대 진영의 공격논리는 무조건 가짜뉴스라고 매도하면서 승기를 잡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가짜뉴스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을 골라 들려주는 가짜뉴스에 열광했고 진실은 외면했다.
같은 신념 공동체 안에서 목표의식이 뚜렷한 구성원들이 가짜뉴스에 중독되면, 이후 이들의 입에선 사이비 교주를 신봉하는 맹신자들처럼 광기와 저주의 말들이 튀어나오고 확증편향이 암세포처럼 증식된다. 가짜뉴스의 해독은 사회 공통의 신뢰를 깨뜨려 결국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불신과 혼란을 자초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짜뉴스의 생산자와 유포, 악용자들까지 자멸하고 만다.
우리 사회의 요즘 형편도 심각하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을 대통령이 직접 경고하고 나설 지경이니 말이다. 특히 책임질 위치에 있는 몇몇 정치인들은 난독증이거나 문해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품게 한다. 1993년 대선으로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래, 이제 정권 교체의 법도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와 공정한 선거를 통한 국민으로부터의 권력 위임에 있거늘 아직도 타도의 대상으로 정당정치의 상대를 이해하고, 민주가치의 절정인 국민주권의 행사로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을 무지막지한 발언으로 폄훼함을 지켜보아서이다. 이 지경이면 실언과 망언의 도를 넘어,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이 울부짖는 괴성에 다름 아니다.
죽이는 말들이 난무하고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요즘, 절기 인사를 바꿔야 할 판이다. "감기 조심하세요!"에서 "뉴스조심 하세요!"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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