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암시장' 성행…학사규칙으로 금지하는 학교도 등장

"400만원짜리 로또" 돈까지 오가는 '선착순 수강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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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서울 소재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오모씨(26)는 졸업 직전 마지막 학기 수강신청에서 필수과목 강의 신청에 실패했다. 수강신청 정정기간에도 강의 신청에 실패하면 따로 학비를 내고 계절학기를 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씨는 "필수과목조차 선착순으로 이뤄지는 탓에 수강신청 당일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며 "수백 만 원의 학비를 내고도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없어 선착순 방식이 상당히 불합리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매년 2월만 되면 대학생들은 수강신청과 전쟁을 벌인다. 시간표 짜기의 성공·실패 여부가 한 학기 성적이나 졸업을 좌우할 수 있어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시간표 짜기에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대다수 학교들이 수강신청을 선착순 방식으로 하고 있어 인기 강의나 필수 과목들은 서버가 열리자마자 마감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2학기 수강신청을 마친 대학생 3700여 명을 대상으로 수강신청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9.5%가 원하는 과목 수강신청에 실패했다고 답했다. 인기수업에 수강인원이 몰려서(52.8%)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고 수강 정원 자체가 적기 때문이라는 답변도 39.6%에 달했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악용한 '강의 암시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필요한 과목을 수강신청한 뒤 정정기간에 돈을 받고 판매하거나 자신이 원하는 수업과 불필요한 과목을 교환하는 대학생들이 등장한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강의 매매를 금지하는 학사규칙까지 만들었지만 거래가 온라인에서 암암리에 이뤄져 적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학생들은 선착순 수강신청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잡코리아에 따르면 대학생 90% 이상은 수강신청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또 학기 초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강신청 방식 개정과 수강 인원 확대 등을 촉구하는 청원 글이 쇄도한다.


서울 소재 대학교 4학년 신모씨(24)는 수강신청을 '400만원짜리 로또'라고 표현했다. 한 학기에 400만원 등록금을 내고 로또만큼 당첨되기 어려운 수강신청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 탓이다. 그는 "재학생 수를 고려하지 않은 수강 인원이 가장 큰 문제"라며 "학기마다 400만원 가까이 등록금을 내는데 누구는 원하는 수업을 듣고, 누구는 못 듣는 부당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졸업이 달린 필수과목까지 자리싸움해야 한다는 게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오는 8월 시행 예정인 '강사법'이 학생들의 수강신청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법은 강의 시간을 주당 6시간 이내, 특별한 경우에만 최대 9시간까지만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사의 임용 기간은 1년 이상으로 하고 별다른 사유가 없으면 3년까지 재임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법이지만 대학들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강사를 줄이거나 강좌를 삭제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앙대학교는 지난해 1학기 1209명이었던 강사를 올해 1학기 945명으로 줄이면서 개설 강좌 수도 4632개에서 4587개로 줄었다. 타 대학도 마찬가지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 따르면 1학기 학부 개설 과목 수가 전년 대비 230개 이상 줄었고,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연세대학교도 80여 개 교양 강좌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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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학교마다 '개설 강좌 수의 감소는 강사법 시행과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학생들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고려대 중앙동아리 인문과학분과 한국사회연구회는 대자보를 통해 "강사법 통과 이후 학교 당국은 단과대 수업을 줄이라는 비공식적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이 사태를 책임지고 복구하라"고 촉구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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