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수입으로 버티는 노후

전세값 내리자 보증금 돌려줄 돈 없어 아파트 급매

60대 이상 '임대보증부채' 규모, 다른 연령층 비해 압도적으로 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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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1.올해 70세가 된 김명인(가명)씨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를 시세보다 3억원 넘게 싼 급매물로 내놓았다. 10년 전 직장을 그만둘 때 쥔 퇴직금에 대출금을 보태 노후 대비용으로 마련한 집이다.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도 꾸준히 올라 노후 걱정은 없었다. 그런데도 김씨가 이 집을 급매로 내놓은 건 얼마 전부터 전세 가격이 급락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금은 소득이 없어 대출을 받기도 어렵고, 나도 강북에서 전세로 살아 돈을 구할 방법이 없다"며 "새 세입자를 구해보려고 기존 세입자에게 시간을 달라고 버텼지만 급매로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 5년 전 대출을 끼고 세종시 아파트를 산 노기민(67ㆍ가명)씨는 최근 전세 가격이 떨어져 대출 이자도 제때 갚기 어려워졌다. 노씨는 "세종시 집값이 오를 것이니 집을 사두라는 권유를 받고 164㎡(49평형) 아파트를 무리해서 샀다"며 "살 때보다 매매 가격은 올랐지만, 전세 가격이 5000만원 정도 내려 지금은 은행 이자도 못 낼 형편"이라고 했다.

최근 전세 가격이 급락하며 '깡통 전세'가 급증해 60대 이상 고령 층의 자산에 비상등이 켜졌다. 8일 하나금융경제연구소가 통계청의 '2018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계는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세(임대) 보증금인 '임대보증부채' 규모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압도적으로 컸다.


김씨의 사례처럼 어느 정도 자산을 가진 노년층의 경우 노후 대비를 위해 대출을 끼고 집을 사 전월세를 놓은 뒤 생활비를 마련하는 투자 방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전세 가격이 추락해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깡통 전세가 늘어 노년층의 부채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년층 빚 증가 폭 최대

"전세 준 아파트 한채로 버티는데"…'깡통전세'에 노년층 휘청(종합) 원본보기 아이콘


하나금융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의 임대 보증금 규모는 평균 4673만원에 달해 연령대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이는 전 세대 평균(3093만원)보다 51% 높은 수치다. 부채를 보유한 가구 중 60대 이상의 가구당 빚(1억1192만원)의 42%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임대 보증금이 60대 이상 가구의 빚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최근 6년 사이(2012년 대비 2018년) 세대별 임대 보증금 증가 폭을 봐도 60대 이상이 843만원으로 가장 컸다. 전체 평균(562만원)보다 50% 이상 높았다. 평생 모은 돈을 밑천 삼아 전세를 끼고 아파트에 투자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노년 층은 최근 전세 가격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이를 상쇄할 정도의 수익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김수정 하나금융경제연구소 자산분석팀 수석연구원은 "국내 가계는 고령층일수록 실물 자산 보유 비중이 커 부동산 가격에 민감하다"며 "베이비붐 이상 세대들은 임대 보증금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 성향이 높게 나타나 전세 가격이 하락하면 상환 부담도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실물 비중 큰 노년층 리스크 취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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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세를 통한 수입으로 노후를 지탱하는 생활방식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유럽과 미국은 은퇴 후 소득이 줄면서 빚도 줄어들지만 한국 고령 층은 나이가 들수록 빚이 더 늘어난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세대별 가계부채의 특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65~74세 연령대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유럽이 33.9%, 미국이 96.4%인 반면 한국은 105.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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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이 윤후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난해 2분기 기준 '연령대별 다중 채무자(3개 이상 금융 기관에서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50세 이상 1인당 평균 채무 금액이 1억4020만원에 달했다. 40~49세는 1억2370만원, 39세 이하는 9050만원이었다. 60세 이상 다중채무자 중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차주는 22.6%였다. 한은 관계자는 "고령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실물 자산이 많지만 유동성 리스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국은 이에 유의해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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