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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밑이 위로 갔던 때/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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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따라 소쿠리 쓰고

텃밭에 갔을 때

똥 마려워

밭고랑에 똥 눌 때

괭이밥이며 개밥두더지 노래기

노린재 노낙각시 새끼지네들이

다 내 밑을 봤다고 중뿔나게 소문을 내고 다녔을 거고

시꺼멓더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을 거고

삼동네 모두 다 소문은 났을 거고


똥 위에 소문처럼

쇠파리 등에 똥파리 금파리 초파리 파리란 파리는 다 날아들었을 거고

할머니가 뽕잎 따다 밑 닦아 주었을 거고

밑이 위로 가게 하고

바라본 할머니가

쇠물재만큼이나 높기도 했을 거고

내 똥 위에 하얗게 배긴 오디 씨앗들의

훌륭한 매개였던 내 몸이 기특해서

똥도 예쁘게 싸 놓았네 내 새끼 하셨을 거고

밭둑의 뽕나무도 이파리 뒤채며

아유, 내 새끼들 했을 것인데

오늘 어린 딸의 밑을 닦아 주며

밑이 위로 갔던 때를 생각해 보고

참외 씨 배긴 똥이 예쁘다는 생각을 해 보고

참외 씨와 오디 씨가

낄낄대며 깔깔대며

우리랑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지 생각도 해 보네


[오후 한 詩]밑이 위로 갔던 때/송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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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던 냇가를, 그 냇가에서 참개구리를 잡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혹은 여름 저녁 풀숲을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나, 가을 초입 논두렁에서 메뚜기를 잡다가 올려다본 하늘에 가득하던 고추잠자리들을 생각하면서 아련해지는 것도, 또는 처마마다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실컷 칼싸움을 하다 "깔깔대며" 와작와작 부숴 먹던 유년의 겨울을 그리워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 딸과 아들 또한 "괭이밥이며 개밥두더지 노래기"가 "우리랑 어떻게 어울려 살았는지"를 우리가 그랬듯이 실감할 수 있을까. 아니 정녕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다음 세대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셈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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