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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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관방차관은 북한의 오찬 요청을 뿌리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별실로 데려가더니 "김정일이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하지 않는 한 공동성명에 서명하면 안 됩니다. 일본으로 돌아갑시다!"라고 소리쳤다. 2002년 9월 17일 북한 평양 백화원영빈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베는 당시 자민당 간사장대리 자격으로 북ㆍ일 정상회담을 위한 고이즈미의 방북에 동행했다. 방북단은 도청을 의식해 중요한 얘기는 필담으로만 나누기로 사전에 약속했다. 그러니까 아베의 말은 고이즈미가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 들으라고 일부러 내뱉은 것이다.


북한으로 넘어간 협상의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엄포였다. 정상회담이 결실을 못 맺는 건 김정일도 원하지 않았다. 오후 회담에서 김정일은 이렇게 털어놨다. "(지금까지는) 행방불명자라고 말해왔지만, 납치입니다. 특수기관의 일부 인사들이 영웅주의에 빠져 그만…솔직하게 사과합니다."


김정일이 납치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한 것이었다. 납치된 일본인들 중 일부인 하스이케 가오루 부부 등 5명이 그 해 10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북한은 일시귀국시킨 것이라며 이들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일본 외무성은 북한과의 향후 관계를 고려해 일단 요구를 들어주자고 했으나 정치권 일각이 반대했다. 반대 여론을 이끌며 '북송 불가' 원칙을 관철한 이도 아베다.


아베는 이 같은 일련의 활약에 힘입어 일본 우익의 희망으로, 고이즈미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일본 언론은 그를 '납치의 아베'라고 불렀다. 고이즈미는 각료 경력도 없던 아베를 이듬해 자민당 간사장으로 발탁했다. 아베는 2005년 내각의 넘버2인 관방장관에 오르더니 2006년 자민당 총재로 등극했다. 납치사건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총리 아베'는 없었을 것이다.


아베는 지난 10일(현지시각) 정상회담차 영국을 방문해 "다음에는 내가 김정은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명분은 아직 미결인 납치 문제다. '다음에는'이라는 표현은 '이제는 정말로 내 차례가 아니겠느냐'고 항변하는 것으로 들린다. 지난해의 발언들에 견줘 더 결연해진 어조다.


아베는 순차적 개헌을 밀어붙여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로 일본을 뒤바꾸려 한다. 그러자면 자국 내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보수여론을 결집해야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대면해 납치 문제를 직접 다루는 게 아베에게 얼마나 매력적이고 상징적인 정치적 카드인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에 한 발 밀어넣을 수 있는 명분도 된다.


관건은 북한의 입장인데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리용호 외무상은 지난달 8일 몽골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 우리도 (강제동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과거사를 해결 또는 이용하려는 아베의 발목을 또다른 과거사가 붙잡고 있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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