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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청론] 성적 지상주의 '스포츠 리셋' 미룰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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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의 성폭력 코치 고발을 계기로 미투 운동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시작되었다. 성적지상주의가 지배하는 엘리트 체육계에서 절대적 권력을 가진 지도자는 선수들을 어릴 때부터 폭력으로 다뤄왔다. 학부모들은 이러한 폭력을 알면서도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이를 묵인해 왔다. 이러한 폭력이 성폭행으로 이어지고, 폭행 사실을 외부로 알리면 선수 생활이 끝이라는 협박이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폭력으로 문제를 일으킨 지도자는 처벌을 거의 받지 않고 어떠한 죄의식도 없이 몇 년 뒤 다시 체육계로 복귀해 지도자 생활을 계속한다. 이렇듯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 묵인하고 방조하는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자란 선수는 수십 년 뒤 지도자가 되어 똑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당사자가 된다.

금메달에 환호하며 말로만 '스포츠 강국' '스포츠 선진국'을 떠들었던 우리의 내면은 점점 더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엘리트 체육계에서 비리와 폭력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부조직에서 나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대충 덮고 올림픽까지 기다리자. 금메달 몇 개 따면 금방 잊히고 묻힐 테니.'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내놓았던 "앞으로 (성)폭력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줄 테니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말고 하던 대로 운동만 열심히 해라"라는 식의 대책으로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욱 근본적 해결책은 오직 금메달과 대학진학이 최고의 목표이기 때문에 생겨난, 국가와 대학-지도자-선수와 학부모로 연결되는 우리나라 엘리트체육의 비정상적 고리에서 찾아야 한다. 즉, 리셋 수준의 강도로 엘리트체육을 개혁해야 한다.
첫째. 학생 운동선수들이 공부할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하기 싫어서, 공부를 못해서 운동으로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 마이클 조던을 비롯한 무수한 스포츠 스타들은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학생 선수가 운동기계가 아닌 공부도 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드는 일은 대한체육회와 문체부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 운동만 잘해서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게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 또한 운동선수는 반드시 체육계열 학과에만 입학할 수 있는 현 제도를 바꿔 운동과 공부를 모두 잘하는 선수는 다른 전공의 학과에도 진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다른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어, 이들의 경기 출전과 진학 등 미래를 쥐고 있던 코치와 감독의 절대 권력이 크게 약해지게 된다. 운동을 하겠다는 학생들과 이를 밀어주는 학부형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둘째, 장기적으로는 교과 성적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현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 입시제도의 변화 없이 '운동하는 모든 학생'을 외치는 교육부의 구호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극소수의 수재뿐만 아니라 학업이 뒷받침되면서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특기가 있거나 운동을 잘하는 학생들도 명문대에 수월하게 진학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줘야 한다. 많은 학생들이 원하는 종목을 골라 스포츠클럽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시설과 지도자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게 된다. 문체부는 이를 장기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수영장, 빙상장을 비롯한 스포츠 시설이 많아지면, 이번 폭력 사태와 무관하지 않은 시설 사용과 운영의 독점권과 관련된 지도자 간의 치열한 경쟁구조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당분간 메달을 따지 못해도 좋으니 엘리트 체육을 개혁하라는 온 국민의 요구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기광 국민대 스포츠재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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