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복의 <윤동주를 위한 강의록>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동주'(2015)의 스틸컷. 왼쪽이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동주'(2015)의 스틸컷. 왼쪽이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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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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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누구든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연결시킬 수 없는 빠진 고리들도 있고, 그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을 듣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망자의 삶을 대할 때면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사람이 스물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식민지인의 족쇄에 차인 채 이국의 싸늘한 감옥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시인이라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에 진주교육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송희복 교수가 출간한 <윤동주를 위한 강의록>은 우리의 모습을 되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인 윤동주(尹東柱ㆍ1917.12.30.-1945.2.16.)의 삶과 문학을 분석한 책이다. 분석이라니까 과하게 진지하고 지나치게 어려운 논리와 용어를 구사한 글이 아닐까 저어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기존 논의와는 꽤나 색다른 방식으로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교의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윤동주의 문학을 중심으로 강의한 내용을 몸체로 삼고 있다. 글이기에 앞서 이 책은 먼저 말로 구연되었고, 그래서 책도 거의 구어(口語)의 음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서 소홀하기 쉬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완성되었는지 딱딱한 질감의 글이 아닌 따뜻한 체온이 담긴 말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편안하고 열린 마음으로 책을 펼칠 수 있는 미덕이 독서를 이끌고 간다.

글이 구어로 진술될 때 문어체의 글에서는 느끼기 힘든 생동감과 교감의 장을 가지게 되고, 설득이나 논증보다는 공감과 소통의 세계와 손잡게 된다. 그래서 전달에 치중하기보다 대화하려는 자세가 요긴해진다. 아울러 대화의 청취자가 젊은 학생들이기에, 그들의 감수성과 세계관에 틈입할 수 있는 제재와 언어를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들을 수강자가 아닌 친근한 대화상대로 만나고 있어, 글을 읽는 독자 역시 가까운 지인의 즐거운 책 읽기 체험에 동참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게 되면 맨 먼저 보는 것이 그 책의 표지다. 이 책은 표지에서부터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붉은색으로 인쇄된 제목보다는 푸른색 파스텔 톤으로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시인의 초상화가 인상적이다. 그림 속의 시인은 선량한 미소를 머금고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있지만, 윤동주의 삶이 어떻게 마감되었는지 알기에 서러운 감회가 앞서는 것을 막을 길 없다. 이 단아한 청년이 자신의 온몸을 던져 써낸 시가 어떠했고, 누가 왜 이 건강한 청년의 몸에 더러운 비수를 꽂아 헤집었는지 궁금증과 의혹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나도 이 책을 펼쳐 읽었다.


이 책은 모두 아홉 개의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시인 윤동주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이해가 그리 넓지 않았기에 즐겁고 무람없는 대화를 통해 그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하여 나는 그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수확을 얻었다. 비교적 책은 시인의 탄생과 성장, 죽음까지 이르는 과정을 편년체의 방식으로 기술했지만, 밋밋하게 연대기식 진술에만 머물지 않았다. 저자는 시인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가름했던 여러 가지 주제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었는데,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을 맛깔나게 제시하면서도 기존의 연구가 이룩한 성과도 외면하지 않고 잘 소화해서 균형을 유지했다. 한편으로 증거와 근거에만 얽매이지 않고 타당한 상상과 추론까지 가미해서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 입체감을 제공했다.


윤동주를 위한 강의록
송희복 지음
글과마음

윤동주를 위한 강의록 송희복 지음 글과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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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나의 흥미를 돋우었던 부분은,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는가를 살펴본(치졸한 동기에서 나온 것은 아니고, 청년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기에 그랬다.) 제3강 '동(冬)섣달 꽃 같은 청년시인, 연심을 품었다'와, 윤동주의 시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천문(天文) 소재 시어들, 예컨대 '별'과 '달' 같은 언어들을 통해 시세계를 탐색한 제6강 '점성술의 관점에서 바라본 윤동주의 시세계'였다.


윤동주 사후 3년 뒤에 나온 유일한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에서도 읽히지만 그에게 있어 지상을 떠난 천공(天空)에 존재하는 모든 물상들은 그의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완성하는 등가물이었다. 저자는 다른 강의에서 윤동주의 공감과 예감 능력을 시를 통해 잘 간파해냈지만, 천문 현상의 시화(詩化)를 통해 시인은 동심(童心)의 천진난만함만이 아닌 예언적이고 운명론적인 시인의 전율이 어떻게 파동했는가에도 치밀한 접근을 시도했다. 저자의 말처럼 윤동주의 시를 이렇게 이해한 평론가는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참신했을 뿐더러, 윤동주의 시가 분출되고 흘러갔던 또 하나의 수맥(水脈)을 발견하는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책은 윤동주 시의 해설에 값하면서도 자장의 진폭을 확장하는 구실도 한다.


삶의 실타래가 잠시 헝클어졌을 때 시인 윤동주가 우리들에게 다가오면 으레 그의 주옥같은 명편들, '서시'나 '자화상', '참회록', '별 헤는 밤' 등을 읊거나 떠올린다. 거기서 우리는 위로와 용기, 그리고 미래로 향할 힘을 얻는다. 나 역시 평범한 독자로서 이런 시들이 내 마음의 '별'이 되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팔복(八福)'이라는 시에서 울컥 세상을 사는 나와 세상을 살았던 윤동주에 대한 연민이 솟구쳐 오른다. 윤동주는 시인으로서 온 누리의 어둠을 빛으로 밝히고자 했지만, 그러면서도 살별처럼 밤하늘을 가르는 슬픔과 불길함을 못내 떨쳐내지 못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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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편안하면서 살가운 대화의 운율만큼이나, 우리가 놓치고 지나갔던 윤동주의 아름다운 시들을 새삼 발견하게 만드는 점에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곁에 시인의 시집을 두고 함께 읽는다면 독창(獨唱)의 집중력만큼 합창(合唱)의 함성과 메아리도 넉넉하게 체감하게 될 것이다.


임종욱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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