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단편영화―세탁/김효은
그녀는
세탁기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웃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이전에도 세탁기 안에 들어가
종종 오래 웅크렸다고 한다
세탁기 속에 태아처럼 허리를 말고
엄지손가락을 빨았다고도 한다
전원을 눌러 주세요
성령 충만한 양수를 채워 주세요
그녀는 세탁기 문에
편지를 써 붙였다고도 한다
드럼 속에서
드림을 꿈꾸던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새 부대가 되겠다고
누구보다 새하얀 새 빨래가 되겠다고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날도 세탁기 속에 웅크려
통성기도를 했다고 한다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는 거듭나고 싶어요
그녀는 입안 가득
표백제를 삼켰다고 한다
빨래라고는 모르던
그녀의 남자 친구가 그날은
신의 얼굴을 하고 와서
찌든 빨래 모드로
전원 버튼을 누르고 갔다고 한다
그녀와 그녀의 아기는
비로소
말끔히 세탁되었고
그녀는 새 옷만 입는
마네킹으로 환생했다던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AD
■끔찍하다. 차마 끔찍해서 믿기지가 않는다. 믿기지가 않아서 그저 어느 영화에서 따온 장면이겠거니 여기고 책장을 넘겨 버리고만 싶다. 얼른 넘겨 버리고 잊어버리고만 싶다. 잊어버리고 다시 깨끗해지고 싶다. "주님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는 이 시를 하얗게 잊고 싶어요. 그러나 찜찜하다. 이미 읽어 버렸는데, 이미 알아 버렸는데, 저 끔찍함을 도대체 어떻게 금세 말끔하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표백제라도 삼켜야 하나. 표백제를 "입안 가득" 삼켜 볼까. 그런데, 표백제라니! 어쩌다 나는 이렇게 끔찍한 생각까지 하게 된 걸까. 그런데 그보다 실은 누가 더 끔찍한 것일까. 이 세계의 끔찍함보다 그것을 잊고 부정하고 외면하려는 우리 자신이 정말이지 끔찍하지 않은가. 채상우 시인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