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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가족이면 쉽게 열람 가능한 ‘등본’…가정폭력 피해자는 어쩌나

최종수정 2019.01.03 10:25 기사입력 2019.01.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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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계가족이면 쉽게 열람 가능한 ‘등본’…가정폭력 피해자는 어쩌나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 “저희 가족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입니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화가 나면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던졌습니다. 아빠의 폭언과 폭행으로 부모님은 이혼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빠는 저희를 따라다니며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등본만 떼면 저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도망 같은 이사를 다니면서 주소지 등록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평생 두려움에 떨며 도망 다니는 우리 가족, 10년이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제발 직계가족의 등본 열람을 제한해 주세요.”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직계가족의 등본 및 초본 열람을 제한해주세요’란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일반적으로 주민등록등본이나 초본은 직계가족이라면 쉽게 열람 및 교부가 가능하지만, 가정폭력이 발생한 경우 피해 가족들이 열람·교부제한을 신청해 가정폭력 가해자가 열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열람 제한 신청 조건이 까다로워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2차 피해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민등록법상 직계가족의 주민등록 열람, 교부제한을 신청할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보면,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직접 열람 교부 제한 신청서와 함께 가정폭력의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해야만 한다. 입증 자료는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의 장이 발급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입소확인서', '고소·고발사건처분결과통지서', '사건처분결과증명서' 등이다.

결국 해당 입증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고소·고발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 하지만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가정폭력 피해사실에 대한 입증이 어려워 고소와 고발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부분을 호소하고 있다. 보통 가정폭력에 대한 고소나 고발을 위해서는 병원 진단서, 사진, 녹음파일 등 물리적 폭력의 증거자료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제 가정폭력은 이런 물리적 폭행뿐 아니라 입증이 어려운 정서적, 재정적 폭력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일부 피해자들은 경찰에 신고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에서 상담한 562건을 피해 유형으로 나눠본 결과, '정서적 피해'가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언, 멸시, 협박, 잠을 못 자게 하기 등이 정서적 피해가 460건으로 81.9%를 차지했다. 신체적 폭력이 381건(67.8%), 생활비를 주지 않거나 경제력이 없다고 무시하는 등의 '경제적 폭력'도 29.4%(165건)에 달했다.

이에따라 가정폭력이 발생해도 실제 경찰 신고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가정폭력으로경찰에 신고된 건수는 27만9000건에 달하지만 이는 전체 가정폭력의 1.6%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된 건수조차 경찰의 가해자 검거율은 14%도 못 미쳤다. 기소율은 9.6%, 구속률은 0.8%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정폭력 피해자의 열람 제한 신청은 전체 피해자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피해자가 열람 제한을 신청한 건수는 2677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사법 전문변호사는 “주민등록법에 따라 가정폭력 등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직계혈족 간에는 등·초본을 제한 없이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가정폭력 피해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때는 주소이전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이 스스로 2차 피해를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것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가정폭력을 홀로 입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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