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서의 On Stage]신·쉰세대 조합 '단짠단짠' 하네
세대갈등·1인 가구·청년실업 다 녹아있는 '앙리할아버지와 나'
고집불통 할배·엉뚱발랄한 대학생의 이색 동거
프랑스 극작가 작품 한국 정서에 맞게 풀어내
갈등·소통의 과정 잔잔한 에피소드 통해 전달
온 가족 즐길 수 있는 연극 내년 2월까지 공연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인생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감기 걸리지 마라."
인생을 달관한 듯 무심한 표정의 고집불통 할배. 시종일관 잔소리를 내뱉는 그의 이름은 '앙리'. 올해 일흔여덟 살이고 은퇴 전 회계사로 일했다. 30년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살고 있다. 그런 그를 찾아온 엉뚱발랄한 20대 대학생 '콘스탄스'. 두 사람의 특별한 동거 생활이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를 통해 무대 위에 펼쳐진다. 단짠단짠(단것을 먹으면 짠 음식을 먹고 싶다는 뜻의 신조어)한 감동을 선사하는 코미디극이다.
연극은 프랑스 극작가 이방 칼베락의 작품으로 2012년 프랑스에서 초연됐다. 2015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원작의 각색과 연출은 이해제가 맡았다. 까칠하고 괴팍한. 그러나 속정 깊은 앙리와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치는 대학생 콘스탄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을 한국 정서에 맞게 보여준다.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와 낙천주의로 가득 찬 신세대의 만남, 그리고 이들이 겪는 갈등과 소통이 잔잔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해진다.
배경은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 앙리가 오랜 세월 혼자 머문 곳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 대학생 콘스탄스가 방 한 칸을 빌리려 찾아온다. 앙리의 룸메이트가 되려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흡연 금지, 애완동물 금지, 애인출입 금지. 온통 금지투성이다. 싼값에 빨리 방을 구해야 하는 콘스탄스는 이 모든 항목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첫날부터 앙리의 피아노를 허락 없이 만지는 바람에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마음의 문을 철통같이 걸어 잠근 앙리에게도 콘스탄스는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시골 마을에서 살며 뭐하나 제대로 이룬 일 없이 아버지의 잔소리를 듣던 콘스탄스는 파리에서의 생활에 낙천적인 태도로 임한다. 시도 때도 없이 딴지를 거는 앙리에게 "유쾌하신 분"이라며 꺄르르 웃고, 애인을 묻는 질문엔 "성 정체성을 아직 찾아가는 중"이라고 답해 그를 당황하게 한다. 끊임없는 잔소리로 콘스탄스를 제압하려던 앙리는 콘스탄스의 밝고 순수함에 동화돼 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 간다.
콘스탄스 역시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재능도 꿈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결국 각자의 비밀까지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앙리와 갈등을 겪고 있는 아들 '폴'과 폴의 아내 '발레리'를 두고 은밀한 계략을 짜기도 한다. 극적인 사건은 없지만 좌충우돌한 일상이 자연스러운 웃음과 감동을 준다. 사별한 아내가 좋아했던 피아노 역시 콘스탄스를 계기로 다시금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다.
연극의 배경은 프랑스지만 극에 등장하는 세대 갈등, 1인 가구, 청년 실업 등의 문제는 한국 사회가 겪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각 인물이 대변하는 세대별 고충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앙리. 그런 아버지를 걱정하면서도 불임과 상속세 고민으로 자기 연민에 빠진 회계사 아들. 대학 졸업과 취업 걱정으로 불안한 시기를 보내는 대학생 등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가 처한 현실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콘스탄스는 인생의 선배이기도 한 앙리를 통해 성공의 의미와 기준을 되돌아보고 훌쩍 성장한다. 앙리가 남긴 유서에 적힌 "짧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우리가 사랑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느냐다"라는 말에 어른 세대가 어린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지혜의 고갱이가 담겨 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세계 1등하겠다"더니 급브레이크…"정부 믿고 수...
앙리 역은 원로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맡는다. 새로운 삶을 꿈꾸는 대학생 콘스탄스 역에는 배우 박소담과 김슬기가 번갈아 출연한다. 앙리의 아들 폴 역에는 이도엽ㆍ조달환, 폴의 아내 발레리 역에는 김은희ㆍ강지원이 출연한다. 대배우들의 노련하고 정갈한 연기와 신예들과의 앙상블이 보편적 소재를 뛰어넘어 신선함을 준다. 신구는 지난 15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앙리는 나와도 반쯤은 비슷한 인물"이라면서 "나머지 반을 마저 찾아 표현하려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로 연기 인생 61년째를 맞이한 배우 이순재는 묵묵히 쌓아온 연기와 인생에 대한 진솔함을 작품에 불어넣었다. 날카롭고 냉소적인 표정과 몸짓 연기로 한국판 앙리를 재현했다.
대선배들과 주연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박소담과 김슬기도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김슬기는 "훌륭한 대본도 마음에 들었지만 이순재ㆍ신구 선생님과 연기하면 작품의 매력이 100% 발산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면서 "연기뿐 아니라 열정, 삶에 대한 자세까지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박소담은 "명랑하고 쾌활한 콘스탄스 역을 맡으면서 저 자신도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다"면서 "추운 겨울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온 가족이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연극"이라고 소개했다. 내년 2월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한다 .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