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객 사이에 사흘이 앉아 있다
 누구도 고인과의 관계를 묻지 않는다
 누구 피붙이 살붙이 같은 사흘이

[오후 한 詩]사흘/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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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듯 없는 듯 떨어져 있다
 눈코입귀가 눌린 사람들이
 거울에 납작하게 붙어 편육을 먹는다
 사흘이 빈소 돌며 잔을 채운다
 국과 밥을 받아 놓고 먹는 듯 마는 듯
 상주가 사흘을 붙잡고 흐느낀다
 사흘은 가만히 사흘 밤낮을 안아 준다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
 그 사흘 지나 종이신 신고
 불 속으로 걸어가는 사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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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殯所)'는 염을 하거나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을 뜻한다. 그런데 나는 좀 엉뚱하겠지만 가끔 그곳을 '비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호상이어서 문상객들이 북적이는 빈소라도 왠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 든다. 왜 아니겠는가. 한 사람의 죽음은 산 사람들에겐 영원히 메꿀 수 없는 공백이지 않은가. "죽은 뒤에 생기는 사흘이라는 품"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오로지 텅 빈 심연 그 자체다. 그래서 죽은 자를, 상주를, "피붙이 살붙이"들을, 문상객들을 그리고 그들이 잠시 모여 머문 "사흘 밤낮을 안아" 주는 주체는 "사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흘 동안 우리는 이 세상에서가 아닌 듯 울고 껴안고 묵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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