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5층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그렇게 시를 지킨다 우리 나이엔 근육량을 늘려야 한다느니 저금리 시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느니 이번 인사가 어땠고 누구 줄을 타야 한다느니…… 소식에서 멀어지기 위해 나를 소식에서 떼어 놓기 위해 나는 오늘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넷이 앉는 자리에서도 여섯이 앉는 자리에서도 나는 늘 혼자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내가 어느 날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소식이 소화되지 않는 불내성증 내려놓은 젓가락과 식탁의 끝선을 애써 맞추며 뿌리채소와 카레라이스를 씹는다 구내식당 벽에는 교과서에 실린 달달한 반찬 같은 시들이 걸려 있고 나는 마츠 에크의 대머리 백조처럼 오늘도 혼자 밥을 먹으며 외롭고 슬픈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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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구내식당/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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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을 하거나 시집을 냈다고 해서 다 시인은 아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나는 정녕 시를 지키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물어보면 창피할 따름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시란 도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시와 시인에 대해 어떤 지극히 낭만적인 믿음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보들레르가 진창 속에 처박힌 시와 시인의 처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는 과연 슬퍼하거나 괴로워해야 할 일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인 또한 사람이고 그가 사는 곳은 세속 한가운데다. 그래서 이 구절은 결코 겸양이 아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단지 시인은 "어느 날 병에 걸렸"을 뿐이다. 그러나 안타까워라. 저 보들레르가 신천옹에 자신을 빗대었다면 허연 시인은 마츠 에크가 안무한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대머리 백조"를 자화상으로 삼는다. 좀 우스꽝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곰곰이 짚어 보면 "대머리 백조"는 얼마나 "외롭고 슬픈"가, 그리고 또한 통렬한가. 빵모자를 뒤집어쓴 대머리 독수리들이 곳곳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시인인 양 거들먹거리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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