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의 한숨
명절세트 판매 25% 줄고 도축장 경매가 5% 하락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요즘 체면이 말이 아니야. 벌써부터 들뜬 마음을 가지고 고향 길로 향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선물꾸러미를 보면 난 왕따 신세야. 존재의 이유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니 한숨이 안 나올 수 없지. 누군데 민족 최대의 명철 추석을 앞두고 한숨만 쉬고 있냐고? 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흔히 소라고 부르는 '한우'야.
1년 전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발효됐을 때 나를 키우는 주인은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내 등을 도닥였어. "아무리 법이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우를 외면하지는 않겠지"라며.
하지만 지금 우리 주인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었지. 이미 지난 설 명절 때 한우선물세트가 작년 대비 25.8% 줄어들어 충격을 받았던 주인이 최근에는 내 몸값도 떨어지자 애간장을 끓이고 있어. 최근 도축장 평균 경매가, 그러니까 내 몸값이 작년 9월보다 5%나 하락했어.
올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 등에서 한우선물세트 판매가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지만 반짝하고 끝날 거야. 청탁금지법으로 여전히 거래처와 한우 고기 먹기 힘든 게 현실이잖아.
나를 관장하는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26일에 '농업인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협회 1200개소의 한우 거래금액이 전년 대비 33.7%나 폭락했다고 말하더라고. 한우 식육판매점의 월평균 매출액도 10.5%나 하락했어. 도축 마릿수도 지난해 10만7000마리에서 2.5% 줄었고 쇠고기 공급량도 15만1000마리에서 24% 적게 공급된다고 하니 수치스러운 일이지.
난 머리부터 꼬리까지 국민을 위해서 다 바칠 준비가 돼 있는데 정부는 깨끗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돈 있는 사람들조차 한우 먹기를 꺼리게 만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조상들한테 들어보니 선한 의도가 모두 정의로운 결과를 내지는 않더라고. 프랑스 혁명기 독재자였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어린아이들의 건강 보육권을 지키겠다며 우유 가격을 내리라고 명령했던 일을 기억해? 로베스피에르는 정부가 책정한 가격 이상으로 우유를 파는 사람을 단두대에 올리겠다고 경고했지. 농부들은 비싼 건초 가격 때문에 적자를 보자 내 사촌 격인 젖소 사육을 포기했고, 결국 프랑스 전역에 우유 파동이 났지.
김 장관은 청탁금지법상 식사한도를 현행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선물은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 정말 이 정도라도 완화되지 않으면 우리 주인은 나를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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