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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야기]자유의 술,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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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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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배우는 목적은 다른 사람의 결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어떤 와인 전문가가 "육류 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다"고 하면 자신 있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맛의 세계는 나만의 것이다. 이름난 전문가가 아무리 맛이 좋다고 추천해도 나에게는 맞지 않다고 과감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나에게 맞는 와인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많이 마셔보면 어느 정도 와인에 대한 주관이 확립된다. 좋은 와인의 맛을 즐기고 자신의 입맛을 최고라고 생각한다면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은 와인에도 통한다.

1700년대 파리에서는 카페에 지적인 철학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은 낮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고 정치와 학문을 이야기했으며, 저녁때는 와인을 마시면서 예술과 문학을 이야기했다. 와인은 이들에게 활력과 창조력을 제공하는 샘물이 된 것이다. 그리고 미모와 지성을 갖춘 귀부인의 살롱에서 열린 파티에서는 사람들이 밤새도록 와인을 마시면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유토피아를 향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즉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함께 자유를 누리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면서 프랑스대혁명으로 다가갔다.
특히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억압 속에 숨겨진 자유를 찾아내며 와인을 마시면서 정신적ㆍ육체적 자유를 추구하게 됐다. 볼테르(Voltaire)는 자신의 영지에서 와인 파티를 자주 열어 철학자들과 토론했고,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에게 와인은 공유할 수 있는 평등의 음료였으며,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역시 미식가에 와인 애호가였다. 이들은 와인이 떨어지면 대화도 끝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와인을 마시면서 재치 있는 대화를 나누고 반짝이는 영감을 떠올렸다. 또 이 시대는 도덕적ㆍ종교적 구속에서 벗어나 육체적인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남녀가 어우러진 파티에 샴페인이 등장하고, 유명한 바람둥이 카사노바(Casanova)와 '사디즘'이란 단어의 유래가 된 사드 후작(Marquis de Sade)은 와인을 성적 억압에서 인간을 해방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와인은 자유라는 토양에서 풍요라는 햇볕을 먹고 자란다. 독재 국가에서는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없고 잘 팔리지도 않는다. 조지아(Georgia), 우크라이나(Ukraine), 아르메니아(Armenia), 몰도바(Moldova) 등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 국가들은 와인의 원산지이지만, 그동안 잘 살아본 적이 없고 공산주의 치하의 50년 동안 이 나라들의 와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없어졌다. 헝가리와 같은 왕년의 와인 선진국도 이제야 제대로 된 토카이를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흑해 연안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나 자유로운 경쟁 체제에서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풍요라는 햇볕이 부족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와인도 오랜 군사 독재가 끝난 1990년대부터 풍부한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자유라는 토양과 풍요라는 햇볕이 동시에 작용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도 1994년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나오고 나서의 일이다.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없다.

와인은 문화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 요소가 모두 잘 갖춰졌을 때 꽃을 피우며 발전한다. 와인의 품질은 맛과 향으로 평가되는데, 이 맛과 향의 좋고 나쁨은 자유 경쟁에서 얻어진다.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유 경쟁 체제라야 맛있는 와인이 나올 수 있으며, 독재 국가에서는 좋은 와인이 나올 수 없다.
 
와인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은 그것을 빼앗아가 버린다. 와인은 우리를 왕자로 만들고, 사랑은 우리를 거지로 만든다. - 윌리엄 위철리(William Wycherleyㆍ영국의 극작가 겸 시인)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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