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의 책 한 끼]친일파 홍사익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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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익 중장의 처형 /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 이진명 옮김 / 페이퍼로드 / 3만8000원

일본인 저자가 본 홍사익, 美 전범 재판 놓고 개탄 "그는 변명없이 받아들여"


'제복을 입고 칼을 찬 홍사익(페이퍼로드 제공)'

'제복을 입고 칼을 찬 홍사익(페이퍼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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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精緻)하고 불편한 책이다. 주인공 홍사익(1887~1946 / 2009년 친일인명사전 등재) 때문만은 아니다. 위관 장교로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일본사람이 태평양전쟁 B급 전범으로 사형된 홍사익을 변호ㆍ찬양하는 건 분명히 어색하다. 그러지 말란 법은 물론 없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사람들은 읽는다.


일본 작가이자 평론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ㆍ1921~1991)는 '홍사익 중장의 처형'에서 미국이 홍사익을 처형한 건 부당하고 위법하며 재판은 불공정했다고 주장한다. 12년 동안 홍사익의 재판 기록을 뒤지고 친지들을 취재해 기록했다. 중반부터 수 백 쪽은 해설과 평가를 덧붙인 재판 속기록에 가깝다.


저자는 '홍사익 재판'을 이 한 마디로 평가절하했다. "미국인은 '침대 없이 (포로를) 바닥에서 자게 했다'는 말에서 학대의 증거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본 측 증인 누구도 '그와 같은 주장'을 하지 않았다고 개탄한다.


'그와 같은 주장'은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은 제네바조약을 비준하지 않았으므로 제네바조약과 무관하며, 제네바조약대로 포로를 취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일본의 '포로취급규칙'으로 논박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포로취급규칙'이 "그것(제네바조약)보다 훨씬 훌륭하고, 더구나 일본의 실정에 알맞은" 기준이라고 강변한다.


미국인들이 "생활양식의 차이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한 탓이라고도 했다. 검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완전히 걷어내지 못하면 피고인을 무죄로 봐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일반원칙에 기댄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홍사익은 도리어 미군 포로들의 처우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그들의 요구를 여러 번 들어줬다고 한다.


전범재판은 전쟁을 일으킨 패잔병을 승전국이 단죄하는 절차다. 여기에 증거주의나 정상을 참작하는 원리를 들이대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전쟁을 일으킨 건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전제하자는 말인지 모르겠다.


홍사익이 베풀었다는 선행을 포로들이 선행으로 느꼈는지, 포로들이 학대를 받는 데 홍사익은 정말로 관여를 안 했는지를 따지려 당사자들을 한 명씩 소환해 신문이라도 하면 저자의 주장은 궁색해질 수도 있다. 따지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막상 홍사익은 자기가 받은 재판이나 마주한 운명의 본질을 간파했다. 그가 죽음을 기다리면서 읊었다는 와카(和歌ㆍ일본의 전통 시가)를 보면 안다. '구질구질하게 생각해 보아도 넋두리리라 / 패전(敗戰)이 죄라고 체념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렇다. 전범으로 기소된 패전국 거두의 가장 큰 혐의는 패전이다.


홍사익은 변명 한 마디 없이 재판에 임했다고 한다. 저자는 홍사익이 대한제국 황제가 내린 '군인칙유'를 따라 입을 다물었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칙유의 6조는 '군인은 말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그저 저 와카에서 내비친 태도의 연장은 아니었을까.


홍사익은 대한제국 유학생 출신으로 일본 육사와 육군대학을 거쳐 일본군 중장에 올랐다. 나중에 광복군 사령관이 된 육사 동기 지청천이 광복군에 합류하라고 권했으나 홍사익은 거부한다. 자기가 일본군을 배신하면 전쟁에 끌려간 그 많은 조선인 병사와 징용 노무자가 보복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게 이유다.


저자는 홍사익의 이런 태도를 한 걸음 더 멀리 바라보는 지혜쯤으로 여겼다. 홍사익의 인품과 삶에 감복하고 그를 흠모했다. 홍사익은 조국을 사랑하고 광복군에 동의했으나 오로지 군인으로서의 충심을 지키려 엘리트 일본 장교의 직무를 수행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그가 어쩔 수 없이 가면을 쓰고 살았다고 추측한다.


홍사익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끝까지 '홍사익'으로 살았다는 점이나 몰래 광복군을 도왔다는 이야기에서 저자의 감동은 더 커진 듯하다. "간단히 말하면, 홍 중장은 일본 육군 가운데서 어디까지나 한국인임을 표면에 내세우고 밀고 나갔으며, '110퍼센트의 일본인'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런 척도 하지 않았다."


이응준 마저도 비슷한 이유에서 가면을 쓴 것으로 바라본 저자다. 이응준은 일본군 대좌 출신으로 해방조국에서 초대 육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응준은 '일본군 장교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는 한편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일본 군인이 되어 천황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책을 번역한 이진명이 '옮긴이의 말'에 적은 몇 마디를 곱씹게 된다.


"윤세주는 약산 김원봉의 동지로서, 1942년 타이항산(太行山)에서 조선의용대를 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그 타이항산 전투에서 일본군 여단장이 홍사익이었다. 이 민족의 비극, 역사의 저주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윤세주 편에 서는 척하며 홍사익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친일파로 몰아붙일 것인가. 아니면 홍사익 편에 서는 척하며 윤세주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뻘건 빨갱이로 몰아붙일 것인가."


비극과 저주는 민족이나 역사가 아닌 일본이 몰고 왔다. 역사는 그 기록일 뿐이다. 극단의 어휘와 기계적 균형 잡기는 위험하다.


맥락은 바다 같은데 저자는 우물을 팠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일본 정치인의 심산과 깊은 데서 맥이 닿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든 정교하고 심지어 어떤 대목에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일본(일본사람)의 능력인가,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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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을 1986년에 펴냈다. 페이퍼로드는 지난 달 번역 출간했다. 페이퍼로드는 "홍사익이 친일파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서 "다만 좁은 의미의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같은 이분법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구한말 식민지시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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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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