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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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앙카라에 간다고 하자 친구가 부러워했다. "야, 양고기 실컷 먹겠구나." 나는 10년 전에 이스탄불에 가서 확인했기 때문에 친구가 상상한 대로 되지 않으리라 짐작했다. 터키에서 양은 귀한 동물이다. 터키의 카펫은 유명한데, 그 재료 중에 양털은 비단 못지않게 귀하다.


나는 터키에서 지내는 동안 양고기를 한 점도 맛보지 못했다. 대신 거의 매끼 닭고기를 먹었다. 스테이크처럼 구워 먹고, 튀겨 먹고, 삶아 먹었다. 터키에서는 닭을 4억 마리 넘게 기른다고 한다. 우리처럼 감옥 같은 데 가두지 않고, 대개 놓아먹인다. 나는 어느 날 카파도키아로 가는 길에 드넓은 아나톨리아의 고원을 떼 지어 가로지르는 닭의 무리를 보고 감탄했다. 몹시 빨라 '저걸 어떻게 잡아먹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음식과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음식이 바뀌면 표가 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실감한다. 냄새가 다른 것이다. 터키에 머무르는 동안, 그러니까 매끼 닭고기를 먹는 동안 나는 매일 아침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에 절어갔다. 그러면서 모공(毛孔)에서 노릇한 털이 돋고, 콧수염과 턱수염이 거뭇해지는 상상도 했다. 이 상상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가끔 나를 사로잡았다.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지 사흘이 지났을 때였다. 나는 내 집 화장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다가 문득 터키와 닭고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닭 떼를 떠올렸다. 냄새가 선명하게 남았던 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배, 큰창자와 작은창자의 용적(容積)을 실감했다. 그곳에서 내가 먹은 닭고기와 올리브와 에페스 맥주와 차이(홍차)와 수박이 뒤범벅됐을 것이다.

(수박이 한창 맛있을 때라고 했다. 아나톨리아의 고원을 지나며 드넓은 밀밭과 수수밭 사이에서 한 농부가 수박 거두는 모습을 보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품듯 두 팔과 가슴으로 수박을 감싸 안아다 수레에 올려놓고 있었다. 저녁 식탁에 오를 저 붉은 과육 한 조각을 참으로 공들여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자놀이에 핏줄을 세워가며 힘을 쓰는 동안 나의 상상은 냄새와 더불어 자욱하게 번졌다. 아아, 그렇다면 나의 내장은 아나톨리아의 미각 뿐 아니라 시간을, 나의 추억을 온전히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눈을 감자 기억의 스크린에서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마츠시게 유타카)가 뇌까리는 각종 음식에 대한 품평과 감탄과 찬사, 지나간 시간에 담긴 원한과 맺힌 응어리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질주했다.


그렇구나. 린위탕(林語堂)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중국 사람은 그 현묘한 창자로 생각한다. 중국인에게는 과학적 증명이 소용없다. 중국인은 그저 배로써 느끼는 것이다.' (아아, 알겠습니다. 그러나 어찌 중국인 뿐이겠습니까. 지금 저도 여기 앉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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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배로 하는 생각이 정지되는 순간도 있다. 술을 마실 때. 끝판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 대한민국 농구대표팀과 축구대표팀의 정예멤버가 격돌한 1970년 '방콕 대회전'의 승자는 농구대표팀이었다. 이때 농구대표팀이 획득한 '스포츠계 대표 주당'의 타이틀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날 이후 비슷한 대결이 벌어졌다는 뉴스도 소문도 없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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