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의 것들을 외면할 것. 닫힌 창 앞에서 그의 일은 시작된다. 온몸에 줄을 걸고 허공에 매달린 그는 정확히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일정한 순서로 반복되는 동작들 앞에서 유리는 순한 동물의 눈빛 같을 것이다 그러나 눈이 먼 채 허공에 열려 있는 것은 그 자신이다. 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저 혼자 익어 가듯이


 오늘 빌딩은 그를 매달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그의 곡예가 창을 지운다. 창밖의 풍경은 선명해질 것이다. 더러움과 먼지와 얼룩이 없다면 이 세계를 어떻게 실감할 것인지. 누구와 무엇과 눈을 맞추어야 하나. 그가 웃으며 위태롭게 흔들린다.

 한 층 한 층 다정한 자세로 내려간다. 그가 지운 얼룩은 내가 오래도록 서 있던 배경인데 단숨에 사라지고 깨끗해진 창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발밑이 서늘해졌다. 육지에서 멀미를 하는 뱃사람처럼 그도 지상에서 잠깐 흔들릴 것이다.


 휘청거리는 그를 따라 젖은 발을 말리러 가고 싶은 저녁 허공을 가만히 더듬어 본다. 그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이 나라면 내가 죽자고 들여다본 것은 그의 빈자리. 이제 막 사랑을 끝낸 사람처럼 허공에 단단히 매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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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허공에 매달린 사람/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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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고층 빌딩의 유리를 닦는 사람에 대해 쓴 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빌딩 안의 '나'의 심정과 생각을 적은 시다. 유리를 닦는 사람은 "더러움과 먼지와 얼룩"을 지운다. 그런데 "그가 지운 얼룩은 내가 오래도록 서 있던 배경"이다. 빌딩 안에 있던 '내'가 "발밑이 서늘해졌다"고 느낀 이유는 유리창이 깨끗하게 닦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유리를 닦던 그가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빌딩 안에 있던 '내'가 바깥으로 나와 유리를 닦던 그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저녁 허공을 가만히 더듬어" 보는 장면은 이 시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한다. 어쩌면 이 시는 "이제 막 사랑을 끝낸 사람" 혹은 비로소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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