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의 책 한 끼]걷는다, 찍는다, 느낀다
아바나의 시민들 /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1만4000원
소설가 백민석 아바나 여행 감흥 담은 사진 에세이
낯선 여행지에서 직관으로 흡수한 이미지는 강렬하다. 우연히 직관한 이미지가 일부러 찾아간 명소보다 오래 기억나는 수도 있다. 직관은 색에 민감하다. 바르셀로나 같은 데서 밤 열 시에 체험한 대낮. 하늘이 아직도 푸르러서 머리와 가슴이 자동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차를 헤아리는 건 그 다음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기 '먼 북소리'에서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이탈리아로 접어드는 감상을 이렇게 기술했다. "국경을 이루는 언덕을 넘어서면 햇빛의 질부터 확 바뀐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갔을 때 느낀 밝음에 대해 흥분해서 써놓은 부분이 있는데, 그 기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괴테는 '사람 색'에도 유심했다. "가르다 호숫가에서 본 사람들은 고동색이었는데, 붉은 볼에 윤기가 조금도 없었다. 그래도 아픈 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매우 활기차고 기력이 좋아보였다."
소설가 백민석(46)은 아바나에 가서 아바나 사람들을 직관하고 사진에 담았다. 가이드북을 따르지 않고 걸어다니다가 "무엇을 찍어야 할지 알지 못"한 채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찍었다. 이렇게 찍은 사진에 감상을 덧붙여 사진에세이 '아바나의 시민들'을 펴냈다.
백민석은 "윤기 나는 초콜릿색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보고 "일부러 그렇게 빚기도 힘들 육체"라고 했다. 어린 아이들의 다갈색 피부는 "인간의 것 같지 않은 색조와 흠 하나 없는 매끈한 질감"이라고 묘사했다. "결국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 것은 태양, 미친 태양 뿐"이라면서 "택시 한 대 지날 좁은 골목에도 격렬한 볕이 가득 차 야수처럼 꿈틀거린다"고도 했다.
직관을 존중하고 감상을 절제하려 노력한 티가 곳곳에서 난다. 말하는 이, 즉 자기를 '당신'으로 물린 것도 그렇다. 출발점은 객관화와 상대화. 싸구려 센티멘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 애쓴 듯하다.
따라서 '낚시꾼의 등'만 가지고도 스케치가 가능했다. "말레콘의 낚시꾼은 등만 보여주는 존재다. 당신은 얼굴이 아닌 그들의 등에서 표정을 읽어야 한다.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씨름할 때의 표정, 작업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희열에 찬 표정은, 당신 자신이 그들 앞에서 표적이 되지 않는 한 거의 알 수가 없다. 당신은 그들이 등을 돌리거나 방파제에서 내려왔을 때야 비로소, 물고기를 잡았는지 놓쳤는지 알 수 있다."(47쪽)
숫제 이런 얘기다. 혁명이나 체 게바라 얘기는 중간에 조금, 양념처럼 나온다. 그래서 좋다. 그런 얘기는 역사서나 평전에서 읽으면 된다. 굳이 얘기를 안 해도 쿠바에 혁명과 체 게바라가 묻어있는 건 알 수 있다.
"음악이 연주되는 레스토랑에 반드시 객석과 분리된 무대가 있고, 조명이 있고, 질 좋은 음향 설비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밴드가 선 자리가 곧 무대이고, 조명은 태양이다."(179쪽/작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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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의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기억할 것이다. 콤파이 세군도는 천진하게 웃지만, 배경이나 채색에서 빈곤과 어둠이 도드라진다. 백민석은 "아바나를 표현한 영상들에 불만이 있다"면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예로 든다.
"고도로 발전된 독일에 사는, 그리고 틀림없이 부자일 빔 벤더스 감독의 기준에서 본 아바나는, 당신 눈에 비친 아바나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가난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자 감독의 영화 속 아바나는 날씨가 가장 우중충한 날만 골라 찍은 것처럼 추레해 보이는 것이다."(120쪽)
그렇다면 쿠바의 영상물은? 백민석은 아바나에서 라틴 댄스 뮤직비디오를 한 편 봤단다. '수영장이 딸린 마이애미풍 저택에서 흰 정장을 빼입은 가수가 글래머들과 춤을 추며 땀을 빼는' 영상이다.
"이번엔 남근주의가 거슬린다"는 저자는 "당신은 그런 뮤직비디오를 즐기는 아바나 비에하의 청년들이, 어떤 주택에 살고 거리에서 어떻게 노는지 알고 있다"면서 "결국, 믿을 건 당신 자신의 사진 뿐"이라고 말한다. "당신의 기계 눈이, 당신이 보는 아바나를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남겨줄" 것이라면서.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입을 맞추는 연인들도, 코히바 시가를 물고 '사진 찍으려면 먼저 모델료를 내놓으라'며 손을 내미는 노인도, 방파제 근처에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무리지어 살사를 추는 젊은이들도 아바나에는 있다.
"아바나의 시가 상점 근처에 가면 이 노인을 만날 수 있다. 진품 코히바 시가 한 대에 십만 원에 파는 것도 봤는데, 그런 시가를 입에 물고 모델 같은 자세를 잡고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먼저 모델료를 내놓으라며 손바닥을 펼친다. 모델료 1달러. 그러면 정교하게 만들어진 밀랍인형처럼 미동도 않고 됐다고 할 때까지 포즈를 잡아준다."(191쪽/작가정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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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은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걸으면서 이들을 그저 찍고, 느꼈을 뿐이다. 대체로 보드랍고, 이따금 까칠하고,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책이다. 이런 걸 '팁'이라고 해도 될까? 아바나를 함축했다. 오히려 부추기는 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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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바나를 싫어할 만한 이유는 쌔고 쌨다. 스페인어를 모르면 식당에서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외국인에게는 이중 환율제를 적용하니, 원화의 환율 덕을 보겠다는 기대는 첫날 깨질 수도 있다. 동남아의 찜통더위하고는 또 달라서 당신은 태양이 미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한국에서와 똑같이 생활하고 싶다면, 아바나가 싫어질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란 변화를 싫어해 습관과 규범에 묶여 있고, 귀가 얇아 통념에 휘둘릴지도 모른다… 영혼의 족쇄를 훌훌 벗어던질 수 있다면, 당신은 아바나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232~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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