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철학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저서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따르면, 모두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짓누르는 행위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야 하는 고통이다. 그로 인한 정신적 노곤함. '착한 사람' 콤플렉스다.
사회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끼어드는 차량에 연거푸 양보하는 운전자는 뒷줄의 교통체증을 알 리 없다. 후배들을 아낀답시고 저녁 술자리에 눈치 없이 끝까지 달라붙는 선배는 뒤통수가 따갑다. 배는 산으로 가는데 선후배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영혼 없이 내뱉는 동료도 오십보 백보다.
구자균 LS산전 회장도 한 마디를 보탰다. 얼마 전 임원 워크숍에서다. "일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구분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전체 경쟁력이 하향 평준화된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무조건 조직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구태"만큼이나 민망하다는 지적이다.
남북 문제는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이 스포츠 교류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겠다고 하자 북측은 '천진난만하다'며 퇴짜를 놨다. 그리고는 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를 격랑 속으로 내몰았다. 모든 선의가 선행을 낳지는 않는 법이다. 역사적 고뇌일수록 선의가 아닌 원칙을 앞세워야 한다. 과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 문 대통령은, 이제는 조금 덜 착해도 괜찮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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