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을 때린 것은 오해요,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을 때린 것은 단련이며,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린 것은 당연하고, 나쁜 사람이 나쁜 사람을 때린 것은 내분이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에 유행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好人打好人是誤會 壞人打好人是鍛煉 好人打壞人是應該 壞人打壞人是內訌"
이것을 다시 표로 만들어 칸에 넣어 분류해 볼까요. 아래의 그림으로 보면 편리할 겁니다.
그런데 ‘착하다’, ‘나쁘다’의 판단에 따라 행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는 것에 함정이 있습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자기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때렸다면 “아, 오해였어, 미안해”라 할 것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때렸다면 “그래, 너는 맞을만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은 사람 입장에서 볼까요. 자기는 착한 사람인데 나쁜 사람에게 맞았다고 생각한다면, 양희은의 ‘아침이슬’처럼 “나의 시련일지라”고 느끼겠지요. 그런데 이 다툼에 끼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때리고 맞는 현상이 ‘내분’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국민대통합의 길로 나가자’는 새 정부가 어떤 눈으로 지금의 어려운 난국을 풀어갈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합니다.
◆견(見), 시(視), 관(觀)
세 글자 모두 ‘본다’는 뜻을 갖고 있지만 엄격하게는 차이가 큽니다. 일반적으로 보는 행위는 견(見), 망막에 비친 형상을 알아차리는 것은 시(視), 망막에 비친 것에 나의 의식이나 판단이 들어간 것을 관(觀)이라고 구분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견’이나 ‘시’는 눈에 큰 문제가 없다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요. 하지만 ‘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달라집니다.
서로 다른 ‘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살아야만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함께 살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도 버리는 역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어렸을 때 질문이 많던 큰 딸이 “아빠, 행복이 뭐야?”라고 묻기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라고 무심코 답을 했는데, 아직까지도 더 나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면서 각자 행복하려면 나와 다른 ‘관’을 갖고 있는 상대방도 행복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지켜주어야 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오래 된 틀, 그 중에서도 이제는 맞지 않는다고 검증된 이론이나 제도를 고집하거나 강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가설, 이론, 법칙
모든 조직은 그 존재 당위성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갖고 있습니다. 학문 체계에서는 통상 가설(假說)로 시작하여 검증을 거쳐 이론(理論)으로써 실제에 적용되고,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법칙(法則)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런데 엄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이런 체계도 검증되지 않은 주관이나 진실을 왜곡시키는 기교가 개입되면 큰 혼란이나 희생이 따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연과학이나 종교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와 경제 분야인데, 이 분야들은 법칙 단계까지 가는 자연과학과 달리 이론 단계에서 실제에 적용되는 특성 때문으로 보입니다.
가설을 세워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이나 집단은 크게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같은 정치적 이론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인 정당은 권력을 잡으면 국가라는 실체를 자기들의 이론을 적용하여 끌고 갑니다. 문제는 이 정당의 존재 당위성을 구축해 주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은 학자적 소신이든 개인적 이해(利害)이든 자기의 이론이 틀렸음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러한 현상이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경제, 경영
새 정부의 첫번째 화두는 ‘일자리’입니다. 일자리 창출은 지금 세계 모든 나라, 특히 선진국 공통의 문제로서 사회안전망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공감대를 모아 끌고 가는 정치적 리더십은 나라마다 달라 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자리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부딪치고 있는데, 한마디로 “공공의 일자리가 궁극적으로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에 다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생산과 분배에 관한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라면, 경영은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창출에 초점을 둡니다. 국가 경제를 다루는 사람과 기업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손익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국가 조직은 효율성이 떨어지면 세금을 더 걷어 공무원에게 급여를 주면 되겠지만, 기업은 손해를 보면 망합니다. 손해를 본다고 국가가 세금을 돌려주지는 않습니다. 나라마다 적자를 보는 기업에 대한 처리에 차이가 있는데, 경영학 교수님들은 ‘기업가 정신’ 운운하지만 한국의 정치권이나 금융제도가 갖고 있는 기업에 대한 잣대는 매우 자의적이고 자기방어적입니다. 기업이 망하면 회사 임직원의 급여가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도 사라지고 일자리도 사라지고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제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인이 “상위지향적인 동시에 분배의 획일성을 원하는 사람들, 법보다는 내적 감성에 지배받는 사람들”로 보인다고 합니다. 일자리와 관련하여 정부도 기업경영자와 같은 절박한 의식을 갖고 정책 운용에 균형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했던 사람의 눈으로 보는 현안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늘 직원들로부터 복지를 확대해달라는 요구를 받게 되고, 실제로 그렇게 해주자는 유혹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회사의 대표로서 자신의 역량을 증명하는 가장 큰 업적은 직원들에게 경쟁사보다 많은 급여를 주고도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새로운 사업을 벌여 신입사원들을 뽑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이 있어서 사람을 채우는 것과, 사람 뽑는 것을 전제로 일감을 찾는(이런 경우는 기업에서 생각하기 어렵지만) 것은 매우 다릅니다. 대부분 기업의 본사관리비 중 직원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직원들은 그런 논리를 세워서 복지를 늘려달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최고경영자가 우려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입니다. 적정한 일감보다 사람이 많아지면 일감이 적절치 않은 사람은 자기가 할 일을 찾게 되고 일을 만들어서라도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도 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벌인 일이 잘못되면, 그르친 일로 인하여 회사에 미치는 유형 무형의 손실이 그 사람의 급여보다 훨씬 더 큽니다. 일거리가 일시 떨어지면 급여를 주더라도 그냥 놀리는 경험도 실제로 해 보았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이 게을러지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놀고먹을 수 있는데 일할 이유가 없는 겁니다. 성과급마저 없어지면 이 현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일감이 적절치 않으면 자기 자리에 대한 불안한 심리가 커져서 그런 사람들끼리 뭉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은 정말 중요하고도 합당한 일입니다. 청년 실업률이 사상 최고이고 조기 은퇴자도 많다고 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충분히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을 자신의 가설이나 이론에 심취해 간과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불안해질 것입니다. 특히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공직에 있어서는 일자리 마련에 기업보다 더욱 엄격하고 신중한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에 옮길 것을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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