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판 '로미오와 줄리엣' 달라진 문화·세계관 표현
‘결혼대소동’ 등 아랍영화제 작품성 인정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6월 첫날에 문을 연 제 6회 아랍영화제가 7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영화 여덟 편을 포함해 총 열두 편이 상영됐다.
이번 영화제는 아랍의 현재를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풀어낸 신작을 통해 이들 문화의 최근 성향과 세계관을 잘 보여줬다. 박은진 아랍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가급적 최근 경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신작 위주로 선정했다. 그중에서도 다른 영화제나 아랍세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들로 채웠다"고 했다.
개막작인 '결혼대소동'(2016)은 레바논 내전(1975~1990년) 이후 변화된 아랍영화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서울과 부산(총 5회)에서 모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한국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아랍인들의 생활상 속에 역사·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절묘하게 녹여내면서도 밝고 경쾌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영화는 아랍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시리아 남자와 레바논 여자의 결혼이 빚은 가족 간 갈등을 그렸다. 20년 전 시리아의 폭격으로 죽은 남동생을 잊지 못한 중년 여성 테레즈는 집안 곳곳에 그의 사진을 걸어놓고 대화한다. 그런 그녀에게 상견례에 초대된 딸의 남자친구와 가족들은 다름 아닌 시리아 인이다. 결혼에 반대하던 테레즈는 가족과 극적으로 화해하며 현실을 극복한다.
영화는 레바논과 시리아 두 국가의 복잡한 역사를 가족과 결혼 등 인류의 보편적인 문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상업영화로선 이례적으로 중년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다양한 여성스태프를 배치하는 등 아랍여성의 시각도 충분히 반영했다.
'결혼대소동'의 주인공 줄리아 카사르(54)는 "아랍의 결혼문화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히 감독과 배우들이 이러한 현실을 잘 읽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테레즈는 동생을 향한 왜곡된 애착관계 때문에 남편이나 딸과 관계가 틀어지지만, 고통 속에서도 열정적으로 삶을 사는 강인한 여성이다. 중년 배우들 입지가 점점 줄긴 하지만 40~60대 주인공을 통해 삶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들려줄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영화제는 국내 잔존하는 아랍문화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일조했다. 최근 일부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 히잡(Hijab,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으로 대변되는 불평등한 여성인권문제 등 아랍문화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는 부정확하다. 아랍 여성들이 억압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히잡 착용여부는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국가나 사회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여성의 자유로운 사회활동을 보장하는 국가가 많다.
영화 '혁명 이후(2012)'로 주도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 유스리 나스랄라 감독(65)은 "히잡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이집트 국민들의 20%는 크리스천이다. 중산층 또는 가난한 사람 상관없이 히잡을 많이 착용하지 않는다. 가족중심의 사회 때문에 여성의 권리가 적은 편이지만, 여성의 70% 이상은 가족을 먹여 살릴 정도"라고 했다.
우리가 아랍영화를 만날 기회는 여전히 부족하다. 아랍영화제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아랍영화를 매년 소개해왔다. 최근 아랍영화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두바이국제영화제의 성장, 서구 영화시장과의 인력교류 등으로 매년 성장세를 보인다. 그만큼 영화의 작품성과 완성도가 높아졌다.
박은진 프로그래머는 "아랍 내 전문교육기관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국책사업으로 정부에서 영화 사업에 투자를 많이 한다. 미국과 유럽에 영향을 받아 화면, 촬영기술, 시나리오 면에서도 예전보다 더욱 세련됐다. 서구와 아랍문화가 적절히 융합된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났다. 여성감독의 활동도 두드러진다"고 했다.
줄리아 카사르는 "전쟁은 레바논의 일상이며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까지는 다양성을 추구하기 어려웠다. 최근 10년 사이에 영화계 재정 지원이 쉬워졌다. 지금도 어려운 생활, 전쟁 등을 다루는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변화된 양상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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