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0원' '사장 막말' '전세계 최고가' 등 각종 비난에도 승승장구
"한국시장, Gracias(고맙다)!" 테스트베드로 적극 활용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18일 서울 한남동 주한 스페인 대사관저에서 스페인 최고 권위의 '이사벨 여왕 십자문화대훈장'을 받았다. 수훈식 후 곤살로 오르띠스 디에르 토르토사 주한 스페인 대사와 신 회장이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롯데그룹 제공)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18일 서울 한남동 주한 스페인 대사관저에서 스페인 최고 권위의 '이사벨 여왕 십자문화대훈장'을 받았다. 수훈식 후 곤살로 오르띠스 디에르 토르토사 주한 스페인 대사와 신 회장이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롯데그룹 제공)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오종탁 기자] "이 시기에 웬 스페인 훈장?"
형과의 경영권 분쟁,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폭풍, 최순실 게이트 재판 등 동시다발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뜬금없이 훈장을 받았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내린 '이사벨 여왕 십자문화대훈장'이다. 이날 주한 스페인 대사관저에서 열린 수훈식에 참석한 신 회장은 다소 멋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라(ZARA) 홈페이지 화면

자라(ZARA) 홈페이지 화면

원본보기 아이콘

정말 하필이면 이 때 왜 스페인에서 신 회장에게 훈장을 준 것일까. 스페인 측이 서훈하면서 신 회장을 '스페인과 한국 간 경제 협력에 높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향후 스페인 경제 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가'라 평가했다고 롯데는 밝혔다. 두루뭉술한 설명은 제쳐두고, 실질적인 수훈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자라(ZARA)의 한국 시장 진출·안착을 도운 공로'다. 자라는 스페인에 본거지를 둔 글로벌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다. 93개국에서 730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세계 패션을 좌지우지하는 'SPA 공룡'이다. 롯데는 2007년 스페인 패션 기업 인디텍스와 합작 법인(인디텍스 80%·롯데쇼핑 20% 지분 보유) 자라리테일코리아를 설립, 자라를 국내에 최초로 도입했다.

29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자라는 국내 시장에서 '기부 0원', '한국 법인 사장의 촛불집회 폄훼 발언', '전세계 최고가 판매' 등 부정적인 이슈에도 승승장구해왔다. 최근 들어선 한국 시장을 '테스트 베드(새로운 제품의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혹은 '트렌드 1번지'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선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제품들에 한국 트렌드를 부쩍 많이 반영하는 추세다. 한국 매장 동향 파악과 시장 선호도 조사·연구를 거쳐 나온 디자인은 아시아 외에 자라의 고향 스페인 등 유럽도 강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말 그대로 '믿고 보는 한국'이다.


한국에 대한 자라 본사의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커졌다. 자라리테일코리아 관계자는 "일본, 프랑스 등 기존 유행 선도국을 주로 돌아보던 본사 직원들이 방한 빈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며 "직접 체험한 다음 실제 디자인, 마케팅 등에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내 매장 직원을 직접 붙들고 한국 시장의 장점과 고객들 수준에 엄지를 치켜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자연스레 스페인 정부도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국민 기업' 자라의 한국 측 파트너인 롯데에 훈장까지 수여하게 됐다.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그룹은 2016년 한 해에만 16억1600만유로(현재 환율 기준 약 2조209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스페인 정부에 납부했다. 지난 5년 간 인디텍스가 법인세로 스페인에 낸 돈은 약 20억유로(약 2조5011억원)으로 스페인 전체 세수의 2%가 넘는 수준이다. 협력 업체 수입과 일자리 창출 등도 따지면 자라의 스페인 경제 기여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해 전세계 전체 매출은 233억1100만유로(약 29조1448억원), 순이익은 31억5700만유로(약 3조9471억원)로 전년 대비 각각 10% 이상씩 성장했다.

원본보기 아이콘

한국에서의 실적 역시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자라리테일코리아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약 259억5600만원으로 전년 대비 224.1% 뛰었다. 매출은 18.8% 증가한 약 3450억8700만원이었다. 수익에서 지출한 모든 비용을 공제하고 순수하게 이익으로 남은 당기순이익은 약 209억9700만원으로 917% 폭증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 소재 자라 상표관리회사(ITX Merken B.V)에 지급한 수수료(로열티)는 2015년 229억원에서 지난해 262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영업이익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다.

글로벌 리딩 기업이 한국 시장에서 잘 나가는 것을 두고 가타부타할 순 없다. 문제는 태도다. 한국의 트렌드를 글로벌 시장에서 적극 활용하고, 매년 수백억원 로열티까지 챙겨가면서도 자라는 인색한 사회 공헌 등 '배짱 영업' 방침을 거두지 않는다. 협력 유통 대기업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지는 데는 발 빠르다. 특히 그동안 수 없이 제기된 기부 관련 지적은 그대로 허공에 날아갔다. 자라는 국내 진출 후 계속해서 기부와 담을 쌓고 있다. 경쟁 SPA 브랜드인 에이치앤앰(H&M)의 경우 한국 내 기부액을 2011년 2억9915만원에서 2012년 2억1342만원, 2013년 5553만원, 2014년 1265만원까지 줄여가다 2015년엔 아예 '제로(0)'로 만들었다. 비판 여론이 일자 지난해(5448만원)부터 기부를 재개했다. 반면 자라는 요지부동이다. 그 사이 자라 창업주인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 회장이 서울의 부동산 가치를 높게 평가해 2015년 명동, 올해 초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건물을 잇달아 사들였다는 애꿎은 소식만 들려왔다.

AD

별다른 사회 공헌이나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실적이 워낙 잘 나오기에 자라가 이런 배짱 영업을 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의 촛불집회 폄훼 논란 뒤 불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매출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올 들어 아시아 시장 맞춤형 '아시아 핏(Asian Fit)' 제품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대비 더욱 좋은 실적 추이를 나타내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의 강연에 참석했다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밝힌 내용.

지난해 11월 이봉진 자라리테일코리아 사장의 강연에 참석했다는 한 네티즌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밝힌 내용.

원본보기 아이콘

지난해 11월 이 사장의 강연에 참석했다는 한 네티즌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장이 "여러분이 시위에 사 나가 있을 때 (시위에) 참여 안 한 4900만명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적었다. 이 사장은 논란이 일자 이 네티즌에게 메시지를 보내 집회 참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며 "직장인은 일을, 회사는 업을, 학생은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미래를 더 나아지게 바꿔갈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2015년에는 자라가 한국에서 전세계 최고가로 판매한다는 조사 결과를 놓고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소비자 최유현(34·여)씨는 "여타 브랜드 의류와 비교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아 자라 제품을 많이 찾는다"며 "한국 시장과 소비자를 봉으로 보는 듯한 태도는 고칠 필요가 있다. 향후 재구매 여부 결정에도 참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오종탁 기자 ta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